교토국제고 학생과 선수 대부분이 ‘일본인’이라 다행, 왜?
||2024.08.23
||2024.08.23
[최보식의언론=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교토국제고 뉴스가 한국 언론과 SNS에 널리 퍼진 것은 대충 8월 19일 8강전(4강 진출전) 승리 이후부터 인 것 같다.
고시엔의 전통에 따라, 승리팀의 한국어 교가가 NHK를 타고 일본 전역에 울려 퍼진 것과 8월15일 KBS의 오페라 나비부인에 사용된 짧은 배경음악(일본 기미가요)에 난리법석을 떨던 후조선 백성들의 행태와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그래서 나도 교토국제고 선수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게 되었는데, 내 눈에 확 띤 것은 박박머리였다. 1982년 두발 자유화 이전에 중고등학교를 다닌, 나를 포함한 86세대들이 했던 바로 그 헤어스타일이다.
일본이 아직도 팩스를 많이 사용하는 것을 볼 때는 현대 문명의 이기에 빨리 적응을 잘 못한다는 생각을 했는데, 교토국제고 학생들의 박박머리를 보니, 일본 사회·문화를 관통하는 그야말로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 실감났다.
사실 1915년부터 시작하여, 태평양 전쟁으로 5년, 코로나 펜데믹으로 1년을 건너뛰고,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여름 고시엔(甲子園) 대회 자체가 감동이다. 너무 부럽다.
그 긴 전통 보다 더 부러운 것은 아직도 3,700여개 팀이 참여하고(많았을 때는 4천5백개), 고교생 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의 관심도 매우 높아, 매 경기마다 관중석을 꽈 메우는 그 거대한 저변이다. 이게 고시엔 뿐이랴! 고교야구는 파리올림픽이나 월드컵 축구 성적이 보여주는 거대한 저변을 가진 생활체육의 하나일 것이다.
대학 입시라는 블랙홀에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가 버리는 한국 고교 현실, 즉 3년 청춘을 전혀 즐기지 못하는 현실과 비교하면, 어찌나 부러운지!
일본처럼 안 되는 이유는 자명하다. 20세 전후 시험 성적에 의해 정해지는 학벌과 (면허·자격 부여) 학과가 꽤 강고한 계급을 만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본과 달리 한국은 18~19세 청년이 한 두 번 실패하면 군대 영장이 나오기에, 그 전에 사력을 다해 높은 계급을 보장하는 학교나 학과에 진학해야 한다.
2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에도 시험을 통해 획득하는 사원증이 꽤 강고한 계급을 만든다. 이제는 민간부문에서는 이런 관행이 많이 줄었지만, 공공부문에서는 여전하다. 노조와 공무원이 주도적으로 만들었다. 정치권은 좌우파를 떠나서 이런 불공정과 비효율을 초래하는 관행(고용의 경직과 과도하고 불합리한 격차 등)에 저항다운 저항도 하지 못했다.
KBS기자였던 전여옥이 ‘일본은 없다’라는 책을 출간한 것은 1993년 말이었다. 내가 대우자동차에 입사하여 유럽과 남미의 판매법인을 돌아본 것은 1995년 6~7월이었다. 그 땐 한국이 정말 일취월장 기고만장할 때였다. 그 기세와 분위기에 취해 나도 일본 쯤이야 했다.
그런데 외환위기를 겪고, 긴 세월 동안 한국과 일본을 대관소찰하다 보니, 일본은 거의 모든 분야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뿌리깊은 나무였다’ 자동차와 자동차부품부터가 그랬다. 그 외에도 수많은 부품 소재 장비가 그랬다.
일본의 느린 적응은 기술 패러다임이나 소비자 취향이 급변하는 시대에는 뒤처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1990년대 이후 도래한 디지털 시대, 세계화 시대, 중국 비상(飛翔) 시대에 발빠르게 적응하지 못하여, 한국&대만과 1인당 소득 수준이 거의 같아지고, 싱가포르의 1/2 수준이 되었다.
한 때는 세계 경제 3, 4, 5위(독일, 영국, 프랑스)를 다 합친 것보다 더 규모가 큰 경제를 가진 GDP 압도적 2위 국가였다가 지금은 중국에는 한참 밀리고, 인구가 8천만명 대인 독일에도 밀리는 4위가 되었다. 일본 산업의 중핵인 자동차 산업도 전기차 시대에는 배터리 강국인 중국과 한국에도 밀릴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쉽게 흔들릴 나라 같지 않다. 부품, 소재, 장비는 여전히 강하고, 무엇보다도 (사회 전반의 합리적인 격차 등으로 인해) 사회의 통합력이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과 한국은 각각의 강점과 약점이 꽤 보완적으로 보인다. 유럽 통합을 주도한 독일은 자신의 강점(비교우위)을 극대화 하고, 약점은 유럽연합을 통해 헤징하였다. 사실 한국, 대만, 일본, 극동 러시아도 경제를 통합적으로 운영하면 윈윈 할 소지가 많아 보인다. 이 땅의 후조선 백성들이 친일 매국 몽둥이를 휘두르며 공동번영의 기회를 무참히 박살내지만 않는다면, 당장이라도 할만한 일이 아닐까 한다.
일제 시대 고시엔 대회에는 조선과 대만과 만주국에서도 참가했다. 위키를 찾아보니 경성중학교(1922년, 1924년, 1926년, 1927년, 1928년), 인천상업학교(1936년, 1938년, 1939년), 평양중학교(1929년, 1932년, 1940년[22]), 경성상업학교(1931년, 1934년), 휘문고등보통학교(1923년), 부산중학교(1925년), 대구상업학교(1930년), 선린상업학교(1933년), 신의주상업학교(1935년), 용산중학교(1937년) 등이 조선 대표로 고시엔에 나갔다고 되어 있다. 이걸 재연하면 '대동아공영권'의 재연이라 할테니, 아예 한국, 일본, 대만의 고교 야구, 고교 축구 대전은 어떨까 한다.
교토국제고 학생과 선수의 대부분이 일본인이라 다행이다. 행여 다수가 한국인이었다면 인종주의적 민족주의 아니 국뽕이 기승을 불릴 뻔 했으니!
교토국제고가 자랑할 것이 있다면 야구부를 만들고, 전국에서 야구 잘하는 학생을 끌어모으고, 이들을 잘 조련한 교장과 야구감독의 경영 능력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학교나 기업이나 지자체 경영 능력은 국적을 초월한다. 국뽕이나 민족뽕의 대상이 아니다. 교토국제고의 신화는 이현세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 같은 만화의 소재가 아닐까 한다. 내가 만화가라면 취재해서 만화를 그릴 것 같다.
#고시엔, #공포의외인구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