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폐업하는 서울 중구 충무로 대한극장 앞에서 만난 60대 중반 여성 이정화 씨는 "공교롭게 오늘 모임이 있었는데 (대한극장이) 마지막 날이라고 해서 장소를 여기로 정했다"고 말했다.
같은 동네 학부모 모임이라는 이 씨 일행은 이날 오전 대한극장 앞에 모여 나란히 앉아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 씨는 "지금 남편과도 여기서 데이트했던 기억이 난다"며 소녀처럼 웃었다.
1980년대 인근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는 이 씨는 "그때는 여기가 만남의 장소였다"며 "명동이 가까우니까 데이트 장소로 많이 찾았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대한극장은 1958년 개관한 후 1980년대 한국 영화의 중심지 '충무로'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벤허', '사운드오브뮤직' 등 당대 최고의 영화를 상영했고 2000년 재건축한 이후 상영관을 늘리며 대기업 소속 멀티플렉스 영화관들과 경쟁했다.
대한극장의 폐관 소식에 많은 시민들은 "시대가 변화하니 어쩔 수 없다"면서도 추억을 떠올리며 아쉬워했다. 40대 남성 오 모 씨는 "초등학교 때 친구와 친구 어머니를 따라가 영화 '후크'(1992년 개봉)를 재밌게 봤던 기억이 난다"며 "추억의 장소였는데 없어지니 많이 아쉽다"고 말했다.
유 모 씨(75·남)는 "중학교 1학년 때 '하늘에서 별이 내리다' 영화를 봤다"며 "그땐 대한극장이 우리나라 최고 극장이었는데 지금은 팔려서 없어진다니 좀 아쉬운 것 같다"고 전했다.
바로 옆 골목에서 22년째 식당을 운영하는 이 모 씨(64·여)는 "대한극장 때문에 많은 권리금까지 내고 들어왔는데 없어진다니 서운하다"며 "코로나 때도 손님이 없어서 놀았는데 자영업자한테는 바로 타격이 크다"고 아쉬워했다.
식당주 이 씨는 "아무래도 젊은층에는 맞지 않았던지 주로 나이 드신 분들이 (대한극장을) 많이 찾았다"며 "작년만 해도 '서울의 봄' 보러 많이 왔는데 할머니들은 '요즘 볼 게 없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20여년간 대한극장에서 일했던 직원들 역시 아쉬운 건 마찬가지다. 이날 마지막 출근하고 퇴사하게 됐다는 직원들은 복잡한 표정으로 내부 리모델링 공사 중인 대한극장을 보고 있었다.
과장급 직원이라는 한 모 씨(60·남)는 "2000년도에 건물 새로 지은 후엔 주말 하루 최고 1만 5000명, 평일에도 3000~4000명 관객이 기본이었다"며 "해리포터 시리즈도 인기였고 한국 영화로는 천만 관객을 동원했던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도 상영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1983년부터 극장 영사실에서 일했다는 이 모 실장(64·남)은 "예전에 안양에서 일했을 때는 필름 가지러 항상 충무로로 왔다"며 "대한극장이나 서울극장에서 하는 영화는 그냥 무조건 흥행이라는 공식이 있었다"고 당시 대한극장의 위상을 설명했다.
24년 전 대한극장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이 실장은 "우리나라 최고 극장에 다닌다는 자부심이 있었다"며 "지금은 다 35㎜ 필름만 돌리는데 대한극장은 70㎜ 필름을 돌릴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70㎜ 필름은 화면도 커야 하고 사운드도 웅장하다"고 말했다.
한 씨는 "(대한극장은) 서울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개인극장이었는데 이제 남은 건 CGV나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같은 메이저(멀티플렉스)밖에 없다"며 "메이저 영화관도 사정이 어렵다던데 넷플릭스가 생기면서 젊은 사람들은 더 영화관을 안 찾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