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동에서] 삼성 위기, 이젠 마누라와 자식까지도 바꿔야 할 판
||2024.10.24
||2024.10.24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 1993년 6월7일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독일 프랑크푸르트 선언이다. 당시 삼성은 국내 1위 기업이지만 글로벌 인지도는 그야말로 바닥을 기는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그룹 회장이 가족을 빼고 모두 바꾸라는 혁신적인 변화를 촉구했겠는가.
1995년엔 삼성전자 휴대전화 '애니콜'의 화형식이 있었다. 애니콜 불량으로 실추된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 당시 시중에 있는 애니콜을 모두 수거해 화형식을 치렀다. 당시 금액으로 150억 원을 태워버린 것이다.
두 사건으로 인해 삼성은 혁신이 경영 철학으로 자리 잡게 됐고, 제품과 서비스를 글로벌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결정적 계기가 됐다. 삼성은 새로운 기업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반도체와 스마트폰 '글로벌 1위'로 우뚝 선 혁명의 시작을 알린 셈이다.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후 30년이 지난 2023년 삼성은 위기를 맞는다. '글로벌 톱'을 향해 달리던 삼성전자는 1분기 영업이익이 6000억 원을 기록,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삼성전자가 영업이익 1조를 넘지 못한 것은 2009년 이후 14년 만이다.
1년이 지난 2024년 위기를 넘어섰을까. 올해 3분기 잠정실적을 받아 든 삼성전자는 고개를 떨궜다. 경쟁자 대만 TSMC는 3분기 매출이 전년보다 30% 이상 늘어났다. 반면에 삼성전자는 어닝쇼크에 '10만 전자'는 커녕 '5만 전자'로 주저앉았다.
반도체를 맡고 있는 전영현 DS부문장(부회장)은 본인 명의로 기대에 미치지 못해 송구하다고 '반성문'을 발표하면서 머리를 숙였다. 향후 기술경쟁력 회복과 일하는 방법을 고쳐 조직문화를 바로 잡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삼성전자 경영진이 실적에 대한 별도의 입장문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 삼성전자를 둘러싼 위기감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글로벌 1위 스마트폰은 애플 아이폰과 중국산 제품 사이에서 버거운 경쟁을 하고 있다. 고대역폭 메모리(HBM)는 SK하이닉스에 밀리고, 엔비디아 AI칩 수주도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파운드리는 세계 1위 대만 TSMC와 격차가 더 벌어져 고심하고 있다.
더욱이 이제 '노조 무풍지대'라는 것은 옛말이다. 노조와의 갈등은 삼성전자 위기론에 힘을 보태고 있을 정도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 위기를 미국의 반도체 제국 '인텔'의 몰락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우려한다. 위기 뒤엔 리더십 부재와 관료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재용 회장의 결단력 있는 메시지가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진대제 전 삼성전자 사장은 삼성 위기를 관료화된 조직문화를 원인으로 꼬집는다. 입사 20년이 넘은 내부 직원은 일을 하기에 앞서 안되는 이유를 먼저 찾는다고 한다. 도전정신은 사라지고 '예스맨'이 판치는 조직이 됐다는 진단이 나올 정도다.
삼성전자 위기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삼성전자 비중은 전체 18%에 달한다. 국내총생산의 약 20% 가치를 창출하고 세수에도 10% 이상 기여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삼성 위기는 국가 위기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모든 기업은 위기를 맞게 마련이다. 위기는 기업에 숙명과도 같기 때문이다. 다만 위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대처하느냐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 차이가 인텔이냐, TSMC냐를 구분 지을 것이 뻔하다. 삼성전자는 1993년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이나 1995년 애니콜 화형식 의미를 되새겨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변화와 혁신은 강력한 리더십에서 나온다. 두 사건이 주는 교훈이다.
필요하다면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넘어서서 마누라와 자식까지도 모두 바꿔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무장해야 한다. 삼성이 위기를 극복하는 길이다.
/이완식 H&J산업경제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