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물포럼] 기본에 충실하지 못한 해경 수장
||2024.10.27
||2024.10.27
지난 21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해양경찰청 국정감사가 진행된 전남 여수시 해양경찰교육원 내 대형 스크린에 선글라스를 착용한 중년 남성 사진이 공개됐다. 이 남성 뒤로는 광활한 에메랄드빛 호수와 울창한 산도 보였다. 의문의 남성이 김종욱 해양경찰청장이란 사실이 드러나자 국감장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당시 김 청장은 지난해 9월18일부터 22일까지 닷새간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제23차 북태평양 해양치안기관장 회의(NPCGF)'에 대표단장 자격으로 참석한 상황이었는데, 사진 속 그는 제복을 입은 해양경찰 수장이 아닌 자연 경관을 즐기는 영락 없는 관광객 모습이었다.
김 청장은 해당 사진을 자신의 소셜미디어 프로필에도 게재한 것으로 전해졌다. 알고 보니, 김 청장이 행사 기간 총회와 폐막식에 불참한 채 회의장에서 1000㎞가량 떨어진 캘거리주 밴프 국립공원을 다녀온 것이다. 로키산맥 자락에 있는 밴프 국립공원은 캐나다의 대표 관광지로 꼽힌다. 공식 출장 명단에 있던 해경 직원 2명도 김 청장 수행과 통역을 위해 동행했다.
그러나 김 청장이 대한민국 해양치안 총책임자 자격으로 국제회의에 참석했다는 점에서 회의 기간에 관광지를 방문한 것 자체가 부적절했다는 시각이 많다. NPCGF는 한국·미국·일본·캐나다 등 4개국 해양치안기관장이 북태평양 내 위기 대응과 해상 보안, 합동 작전, 불법 어로, 밀수·밀입국 등 각종 해상 치안 현안을 심도 있게 논의하고 협력 방안을 강화하기 위해 개최하는 주요 회의다. 밴프 국립공원 쪽에서 하루를 묵은 뒤 밴쿠버로 다시 돌아온 김 청장은 이번에는 여객선을 타고 빅토리아섬을 방문했다. 당일 회의장에선 총회와 전문가 그룹 발표, 마무리 총평, 단체 기념 촬영 등이 진행됐다.
국감장에선 김 청장의 사적 관광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다. 더불어민주당 문대림(제주시갑) 의원은 “김종욱 청장은 평소 외국 치안기관과의 국제 협력을 강조했는데 국제회의 중간에 나와서 사적 관광을 했다. 이게 국가기관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냐. 이렇게 간 큰 경우는 본 적이 없다”고 맹비난했다. 이에 김 청장은 “이틀간 양자 회의 등 중요 업무를 수행하고 그 외 실무자 회의와 총회 등 일정은 부단장이 소화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이유 불문하고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지난해 1월 해양경찰청장으로 취임한 김 청장은 해경 창설 70년 만의 첫 순경 출신 수장으로, 비간부 승진 신화를 써낸 인물이다. 그는 같은 달 5일 인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해양경찰청 대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기본 임무에 충실한 해양경찰이 되자”고 강조한 바 있다. 해경은 인천에 뿌리를 둔 중앙행정기관이다.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참사 책임을 물어 해양경찰청을 해체했을 때 인천시민은 '해경 부활·인천 환원'을 목 놓아 외쳤고 덕분에 해경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연수구는 내년 청사 이전 20주년을 앞둔 해양경찰청 노고를 기리기 위해 해양경찰청 앞 400m 구간에 '해양경찰청로'란 명예도로명을 부여하는 등 지역사회에서 해경 위상을 높이려는 노력이 펼쳐지고 있다.
그렇기에 김 청장 일탈에 실망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김 청장에게 묻고 싶다. 해외에서의 대한민국 국격과 해경 위상보다 현지 관광이 더 시급하고 중요했는지, “기본에 충실하라”고 강조해온 청장 자신은 기본을 지켜온 것인지. 300만 인천시민과 해양 치안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해양경찰관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청장이 되길 바란다.
/박범준 사회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