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다시 개헌을 생각한다
||2024.10.29
||2024.10.29
정치 현상이나 사회 현상의 이면에 작동하는 인과관계만을 오랫동안 분석해 온 사회과학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있다. '결정요인'이다. 전쟁은 왜 일어나는가, 혁명은 왜 일어나는가 같은 거시적인 일반이론으로부터 어떤 특정한 역사적 사건의 배경에 작용해온 변수들의 인과관계며, 어떤 경우에는 구체적인 정치·사회 현상이나 혹은 생활세계의 일상적인 장면들을 만들어내는 미시적인 요인들의 논리적인 구조들을 밝혀내는 그 모든 과정에서조차 여전히 구조와 행위의 문제는 어느 것이 더 '지배적인 결정요인'이라고 딱히 꼬집어 말하기 어려워지는 경우들이 있다.
비록 구조는 행위가 작동하는 공간일 수 있다. 하지만 역사나 사회구조 같은 거시적인 층위의 구조적 관점이 아니라, 정치구조나 권력구조 같은 구체적인 추상 수위에서만 되짚어 보더라도, 예컨대 박근혜 정권은 왜 탄핵이 되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권은 어떻게 다시 탄생할 수 있었는지, 의회 절대다수 거대의석을 차지하고도 문재인 정권은 왜 정권을 재창출하지 못했는지 같은 일련의 정치적 맥락들로부터 작금의 87년 이후 민주주의 공고화 과정에서 노정되고 있는 여러 가지 제도나 운용상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구조나 체계상의 요인들과 특정의 행위적인 요인들은 종종 어느 것이 더 본질적으로 그와 같은 상황이나 결과들을 만들어내는 요인일는지 경합하는 양상마저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어떤 인과론적 분석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치에서 두 번 다시 용납되어서는 안 될 장면은 분명히 있다. 정치적 상황과 정치적 의사결정이 특정의 행위자 개인들에 의해 좌우되는, '국정농단'이다. 1차 집단 사이에 권한을 독점하고자 하는 권력의 속성은 권력자 주변에 수많은 비선(秘線)과 그 아류들을 만들어내고, 그 비선들로 인해 결국 시스템은 무력화되고 구조와 체계가 무너지는 장면들을 우리는 이미 충분히 목도하지 않았나?
국가시스템이 그 체계에 속해있지 않은 특정의 행위자 개인들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은 대단히 불행하고 위험한 일이다. 그것이 구조나 체계에 의해 만들어진 사태나 사건이라면 교정의 여지라도 있을지언정, 개인의 행위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면 그조차도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위험성이 이미 목도되고 예견되었다면 제도상의 교정을 통해서라도 충분히 시정되고 예방되어야 했지만, 우리 정치는 아직 그때로부터 제도적으로 한발 나아가지 못했다. 말하자면 우리 정치는 아직 비선이 허용되는 정치구조를 가지고 있다.
지금에 와서 다시 개헌을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승자독식의 구조, 언제라도 숨은 비선들이 활개를 쳐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권력체계, 계층과 성별, 정치적 이해관계에 상관없이 여지없이 양분되고야 마는 진영 간 대립과 경계, 그리고 그 와중에 제 손으로 제왕을 뽑게 되는 정치적 아이러니, 바로 그런 것들 때문이다.
한 사회의 민주화 과정은 이후의 민주주의 공고화 과정에까지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정치적 책임성보다 정치적 정당성에 우위를 두는 '87년 체제'에 머물러 있기에 한국사회는 이미 다원화되었고 절차적으로도 충분히 제도화되어 있다. 오히려 오늘날의 고민의 수준이 제도를 합리적으로 보완하고 민주주의의 실질적 내용을 어떻게 채워갈 것인가에 있는 것이라면, 그것에 걸맞은 '포스트 87년 체제'의 새로운 제도적 틀을 만들어가는 것이 현재에 부여된 정치적 과제일 것이다.
/고성원 전 인천대 정책대학원 겸임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