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평화주의자 안중근
||2024.10.29
||2024.10.29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을 보면, 살인 사건을 두고 네 사람이 각각 다른 증언을 한다. 비가 쏟아지는 날에 나무꾼, 승려, 무명의 한 남자가 비를 피하려고 한자리에 모인다. 승려와 나무꾼은 풍문으로 들었던 살인 사건 이야기를 나눈다. 숲속을 가던 무사가 살해되고, 그의 아내는 도적에게 겁탈당한다. 이 사건에 대해 나무꾼, 도적, 무사의 혼령, 아내의 진술이 모두 달랐다.
역사를 두고 '라쇼몽' 같은 일이 종종 발생한다. 사람들은 다양한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본다. 국가, 민족, 집단의 이익과 이념 혹은 개인의 신념에 따라 역사를 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실 하나에 대해서도 다른 해석으로 충돌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1909년 10월26일 하얼빈역, 환영인파 사이로 일본 거물 정치가 이토 히로부미가 플랫폼에 내렸다. 이어 날카로운 총소리가 아침 공기를 갈랐다. 이토가 쓰러지고 총을 쥔 안중근은 '코레아 우라(대한 만세!)'를 외치며 체포당했다.
이토 히로부미 저격은 한·일에서 전혀 다른 반응과 해석이 나왔다. 당시 일본인들은 일본의 국제적 위상을 높인 이토 히로부미가 한국인 청년에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고 치욕을 느꼈다. 일본 언론은 안중근을 폭도, 광견, 무뢰한이라고 비난하고 폄하했다. 그러나 한국인에게 안중근은 의사이며, 위인이었다. 하와이 교민신문인 신한국보는 “인민이 이토 히로부미의 사망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라고 보도했다. 상하이에서 독립운동하던 박은식은 「안중근전」을 저술해 그의 의거가 일본의 만주와 중국 침탈의 야욕을 저지하고 동양 평화를 지키려 했던 행위라고 극찬했다.
하얼빈역은 당시 러시아 관할 중국 영토였다. 그러나 일본은 안중근을 자신들의 관할 지역 중국 뤼순으로 불법적으로 연행한다.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서 적국의 포로가 된 나에게 만국공법을 적용하라”는 안중근의 주장은 무시되었다. 서양의 국제법인 만국공법에 따르면 안중근의 의거는 독립을 위한 정당한 전투행위였다. 일본은 항일 단체의 존재와 자신들의 불법 행위가 드러날 것을 두려워해 안중근을 일본 법정으로 옮기고 일반 살인범으로 처형했다.
안중근은 '저격 사유 15개조'를 통해 동양 평화를 어지럽힌 이토 히로부미의 죄상을 지적했다. 이는 일본의 야욕에 대한 경종이었다. 그의 사후 조선이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일본이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침략하면서 그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하마스의 전쟁으로 이어지는 역사와 세계경제전쟁의 실상을 볼 때, 인류는 평화주의자 안중근의 호소와 반대로 살아왔다고 신랄하게 비판받아야 한다. 작가 김훈의 말처럼, 안중근은 약육강식하는 인간세의 운명을 향해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고 있다.
/홍동윤 인천시 시민통합추진단 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