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자의 은하수
||2024.11.25
||2024.11.25

길고 넓은 층계를 지어 둔 아틀리에의 입구.
이성자의 그림에는 그만의 유토피아가 있다. 프랑스 남동부 투레트 쉬르 루(Tourrettes-sur-Loup)의 아틀리에는 그가 그림으로 표현했던 낙원의 가장 구체적이고 건축적인 구현이다. 건물을 하늘에서 바라보면 이성자가 70년대에 남긴 아이코닉한 추상화 작업에서 비롯된 형태가 보인다. 약간 틈을 두고 합일을 이룰 듯한 두 개의 반원. 가운데가 들어간 왼쪽의 반원은 ‘음’, 가운데가 튀어나온 오른쪽 반원은 ‘양’이다. 이성자가 줄곧 그려온 ‘음’과 ‘양’의 모티프. 이를 형상화한 작업실이 바로 ‘은하수’다. 1970년대부터 이성자는 비행기에서 본 새로운 도시라는 주제로 작업했다.
두 개의 건물 사이에는 얕은 개울을 만들고 돌다리를 두었다.

아틀리에 내부. 회화와 함께 목판화 작업에도 열성적이었던 그의 작업 도구들이 한쪽 벽면에 걸렸다.
여행 중 계획 도시인 브라질리아를 목격하고 마침내 ‘원형’ 혹은 ‘음양’이라는 자신만의 모티프를 찾아냈다. 1951년 한국전쟁 당시 한국을 떠나 프랑스에 정착한 이성자는 여성이며 어머니이며 예술가였던 자신의 삶 2막을 파리와 투레트에서 홀로 펼쳤고, 놀랍도록 빠르게 프랑스 아트 신에 진입했다. 그는 꽤 독립적인 성격이었다. 여름용 작업실로, 다소 고립된 지역인 투레트의 집과 땅을 처음 매입한 때는 1968년. 이후 기존 집을 허물고 다시 지어 아틀리에로 삼았고, 파리 6구에 있는 스튜디오와 이곳을 오갔다. 파리라는 대도시와 대비되는 절대적 고요를 투레트에서 누린 것이다. 250평 규모 아틀리에 평면도는 이성자 작가가 직접 그렸고, 지역 건축가 크리스토프 프티콜로와 협력해 1993년에 완공했다. 두 덩어리로 잘린 집의 외관은 하얗고 매끈하며, 무작위로 배치된 것 같은 작은 창이 여러 개 뚫려 있다. 두 개의 잘린 집은 서로 마주보고 있지만 약간 어긋난 형상이다. 이성자의 은하수는 신화와 신비, 조화, 희망 등을 상징하는 우주적 자연으로 표현된다. 그는 낮에 ‘양’의 건물에서 회화 작업을 하고, 밤이 오면 ‘음’의 건물에서 판화 작업을 했다. 회화는 캔버스 위로 색을 쌓아 올리는 ‘양’의 모습이고 목판화는 오목하게 파내는 것이니 ‘음’에 해당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한옥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덧살 창.

종이를 붙여 만든 덧살 창이 파손되면 다른 종이를 덧대며 나뭇잎 장식을 더하기도 했다. 작업대 위에는 목판이 올려져 있다. 이성자 작가는 목판화 작업에서 나무판을 사각형으로 다듬지 않고 자연스러운 형태를 그대로 살려 사용했다.

그는 도자기를 종합예술로 여겼고 파리에서는 회화, 투레트에서는 판화, 한국에서는 도자기 작업에 매진하곤 했다.

둥근 벽에 작은 창을 낸 외관.
이 시기에 이성자의 작업도 양과 음이 순환하듯 유화과 목판화가 서로 연관을 가지며 조형적으로 발전했다. 작가는 이 작업실을 “내 인생의 완성을 시도한 작품”으로 꼽았다. 지금은 메마르고 수풀이 무성하지만 두 개의 건물 사이에는 개울이 흘렀다. 흡사 한국의 냇가처럼 돌다리가 놓였다. 다섯 살 때 폭포 기슭에서 살았고 돌다리를 건너며 학교에 다녔다는 작가의 어린 시절 추억에서 건져 올린 듯한 물길과 돌다리는 아틀리에 부지의 중심부를 관통하며 갈라진 땅을 적셨다. 물길은 집의 위쪽에 만든 수원에서 흘러나와 두 건물 사이의 화단 곁을 구불구불 흐르다 이내 아랫목의 분지에서 끝난다. 물길의 종점에는 지하 파이프를 매립해 다시 상류로 흐른 물을 올려 보내 순환시켰다. 외관은 희고, 내부 벽은 코발트 블루 컬러인 집 안으로 들어서면 창호지를 바른 듯 얇은 종이로 마감한 나무 창이 건물이 지닌 곡선을 따라 아름답게 설치돼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