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평택 선말산과 부용산 ‘방공호’
||2024.11.25
||2024.11.25
지금은 세계 최대 미군기지인 캠프 험프리스가 들어선 평택에 1910년대 말 일본이 항공대 시설 공사를 시작했다. 중국으로 향하는 비행기들의 급유와 보급이 목적이었다. 이곳 비행장은 1937년 중일전쟁 때 요긴하게 활용되었다. 태평양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던 시기 일본군 대본영은 '결호작전'을 세운다. 이 가운데 '결7호 작전'은 제주도와 한반도 남쪽을 결사적으로 지키겠다는 작전명이다.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알뜨르비행장 남쪽 해안을 따라 '인간어뢰' 기지 등을 위한 해안동굴이 만들어진 것도 그 시기다.
'남선'(한반도 남쪽)인 평택 비행장 일대에도 이 시기에 활주로 확장공사가 이루어졌다. 활주로 주변에 굴을 판 이유는 유류시설을 저장하거나 유사 시 대피장소로 쓰려고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인근에 사는 주민들은 굴의 존재를 알았으나, 일반적으로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굴이 위치한 평성읍 안정리, 남산리, 함정리, 객사리 일대에 일찌감치 미군기지가 들어선 탓이다. 10여 년 전에야 이 일대 곳곳에 인공굴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외부로 전해졌다. 대체로 '방공호'라 불린 이들 굴을 일본 해군이 왜 팠는지는 상세히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지난 20일 학술조사 결과 객사리 부용산에 2개, 함정리 선말산에 2개가 확인됐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부용산 굴은 2023년 11월 완공된 부용산 공원 조성 공사 과정에서 이미 그 존재가 드러난 상태였으나, 선말산 굴은 지역 향토사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실체가 밝혀졌다고 한다. 4개의 굴 모두 폭은 2.5m였고, 길이는 18~51m였다. 이들 굴은 활주로에서 4㎞ 정도 떨어진 거리에 만들어졌다. 굴의 상태로 보아 공사를 하다가 패망으로 완성을 보지 못하고 중단한 것으로 짐작된다. 미군이 1951년 이곳 시설 일체를 넘겨받았다.
일왕이 무조건 항복을 하지 않았다면, 제주도민들도 오키나와 주민들처럼 결사항전에 동원돼 숨져갔을 것이다. 평택에서는 또 어떤 희생이 벌어졌을까. 평택 역사의 상징과도 같은 부용산, 병자호란 당시 3학사 화포 홍익한의 포의서원이 있었다는 선말산(서원이 있었던 마을의 산이라는 의미)은 어떤 피해를 입었을까. 태평양전쟁 당시 제공권을 미군이 쥐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평택 일대가 공습 대상에 포함되었을 게 뻔하다.
평택시는 학술조사 결과를 토대로 이들 굴을 어떻게 활용할지 모색할 예정이다. 누구나 쉽게 찾아가서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장소로 거듭나기를 기원한다.
/양훈도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