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량보다 증량이 더 어려워
||2024.11.26
||2024.11.26
집에서 도보로 5분 내에 공립 도서관이 하나 있다. 동네에 도서관이 생기기 전에는 차로 5분 내에 있는 옆 동네 도서관을 이용했는데 이제는 우리 동네 도서관을 이용하게 되었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자주 찾아가는 편은 아니지만 점점 방문 횟수가 늘고 있다.
독서가 마음의 양식으로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임을 알지만 독서를 꾸준히 하기는 쉽지 않다. 좋아하고 즐긴다고 해도 요즘처럼 다양한 매체를 통해 지식과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세상에서 독서량을 늘리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동네마다 도서관이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건물에 하나씩 자리 잡은 커피숍만큼은 아니더라도 동네에 도서관이 하나쯤 있다면 책에 관심 없던 사람도 한 번쯤 들러서 기웃거려 볼 것이다. 그러다 책의 매력에 빠지고 독서광이 되기도 한다. 굳이 책에 미치지는 않더라도 책을 가까이하는 습관만으로도 마음이 부자가 되는 길을 걸을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말을 물가에 데리고 갈 순 있어도 물을 먹일 수 있는 것은 아니듯이 도서관에 간다고 해도 책을 읽게 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유튜브에 빠져 지내는 딸 아이를 데리고 도서관에 가면 항상 찾는 곳이 정기간행물이 있는 열람실이다. 그래, 책만 읽으란 법 있나. 정기간행물도 좋지.
대판과 베를리너판 신문들이 놓여 있고, 주간이나 월간, 격월간, 계간 매거진들이 진열대에 늘어 서 있는 공간은 필자도 좋아하는 편이라 그곳에서 자주 독서를 즐기는데 딸도 그 공간을 좋아했다. 그런데 신문이나 잡지들을 슬쩍 둘러보고 빈자리를 골라 앉더니 휴대폰을 꺼내 예의 유튜브 채널을 켜는 게 아닌가. 그럼 그렇지. 요즘 아이들에게 책이란 따분한 것일 뿐 동영상만 못 하지.
넓은 유리창 밖으로 도시의 풍광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책과 정기간행물로 둘러싸인 아늑한 공간에서 봄날의 햇살을 만끽할 수 있는 책상 자리에 앉아 좋아하는 유튜브 영상을 보는 것. 그것도 도서관에서 가능하다.
요즘 도서관은 레트로LP∙CD턴테이블이나 신상 노트북도 구비되어 있어서 책만 있던 옛날 도서관과는 사뭇 다르다. 그렇다고 해도, 딸처럼 이어폰을 끼고 휴대폰을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도서관을 찾는 대부분 사람들은 그곳에서 주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한다.
한참 동안 휴대폰만 보던 딸은 졸음이 오는지 이어폰을 빼고 책상에 엎드려 눈을 감는다. 참, 점입가경이다. 가끔 영화관이나 음악회에서 잠을 자는 사람들도 있는데 필자는 그것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어쩌면 감상의 최고 단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잠들 수 있을 정도라니 얼마나 마음이 편안하면 잠이 올까. 작품이 평이하거나 장소가 편할 때 느끼는 감정은 지루함이나 권태로움이라고만 할 수 없는, 차원이 다른 안락함이 있다. 지적 재산이 주는 풍요로움이라고도 할 수 있고, 지적인 허영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기만 하면 졸린다는 사람들이 있다. 이 얼마나 건강한 정신인가. 어떤 이는 약물을 다량 투여해도 못 자는 사람이 있는데 책으로 잠들 수 있다니 웰빙 수면제가 따로 없다. 좀 더 건강하고 건전하게 잠들 수 있는 방법이 도서관에 있었다.
그리고 책은 양서 위주로 읽을 것을 권장한다. 함량 미달의 불량 도서도 많지만 주로 공무원 신분인 사서 선생님들이 골라놓은 책들은 믿고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을 읽느냐에 따라 생활이 달라지고 아무 거나 읽으면 탈이 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책을 읽으며 잠드는 것은 누려도 좋다고 생각한다.
입가에 침이 흐를 정도로 오수에 살짝 빠졌던 딸은 부스스 일어나 눈을 떠 주위를 둘러본다. 문학 전문지에 실린 칼럼 읽기에 빠져 있던 필자는 딸이 보내는 귀가 사인에 못내 아쉬워하며 응답했다. 잠깐! 그냥 가는 것보다 도서를 대출해서 한 권이라도 가지고 가자. 집에서도 읽게….
학생일 때는 책을 곧잘 읽다가도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책과는 멀어지기 쉽다. 나이가 들수록 책을 점점 멀리하다가 노안이 오는 황혼기에 접어들면 책과는 아예 담을 쌓고 사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라고 한다.
통신과 기기의 발달로 종이매체가 다소 소외되는 듯한 실정이지만 여전히 읽는 사람들은 읽고, 리터러시는 시대를 막론하고 중요한 능력이다. 그래서 그런지 도서 출고량이 감소하기는커녕 매일 새로운 책들이 끊임없이 출간되고 있다.
‘평생 공부’에서 파생된 말로 ‘평생 다이어트’라는 말이 있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비만이 되지 않게 체중을 줄이는 작업을 계속하는 것이다. 운동도 적당히 하고 식단 조절도 해서 늘 항상성을 유지해야 한다.
그렇게 다이어트 습관이 배다 보면 증량이 오히려 더 어려워진다고 한다. 평생 공부도 마찬가지다. 몸의 건강을 위해 다이어트를 하듯이 학생 때처럼 계속 읽어서 문해력이 늘면 독서를 안 하는 것이 오히려 불편하다고 한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했으니 다이어트도 하고 독서도 해서 건강하고 여유로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도서관을 나서기 전에 도서대출을 위해 서가를 둘러보려는 필자의 팔을 끌며 딸은 투정을 부리기 시작한다.
“에이, 그냥 가요. 집에도 읽을 책이 있는 뭘 빌려서까지 가져간대요. 또 올 거잖아요.”
맞는 말이다. 동네 도서관이 그래서 좋다. 언제라도 와서 책을 읽을 수 있으니 말이다. 딸과 함께 도서관을 나와 마트에서 저녁 찬거리 몇 가지를 사들고 집으로 막 들어서는데 딸의 휴대폰으로 문자가 도착했다. 방금 나온 도서관에서 온 문자다.
‘○○○님, 연체도서를 알려드립니다….’
푸하하하. 집에 있는 읽을 책이 그 책이었구나. 연체를 해도 연체이자가 없으니 괜찮다. 이자가 있다고 해도 읽고 싶은 책은 읽어야 하는 직성은 독서를 재촉하지 않아도 수불석권의 운명을 타고났으니 당장 책을 읽지 않아도 걱정 없다. 요는, 누구든지 독서습관을 기를 수 있는, 영혼을 살찌우는, 친구 같은 도서관을 동네마다 하나씩 늘리는 것은 의대 증원처럼 어려운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