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절규’ 그 너머
||2024.11.26
||2024.11.26
여름에 장마가 지나가고 나면 폭염이 찾아오는데 이 고비는 가을이 곁에 다가와 있음을 예고하는 것이니 견딜만하다. 여름 어딘가에 시원함이 있다고 했던가. 요즘은 건물 안으로만 들어가면 에어콘이 설치되어 있어서 여름도 살만한 것 같다. 더울 때 더 각광받는 건물 안 피서지로 어디가 좋을까.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복합 예술센터 ‘예술의전당’. 그곳에는 1988년 설립 당시 1단계로 개관한 대한민국의 대표 서예 뮤지엄인 ‘서울서예박물관’이 있다.
서울서예박물관은 국내 최초이자 유일의 서예 전문 전시장이다. 개관 이후 다양한 전시를 기획하여 주최해 왔는데, 우리 서예사의 맥락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자 1988년 시작한 '한국서예사특별전'은 그중에서도 큰 의미를 갖고 있다. 우리 서예가 중국의 그것과 구별되는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을 뿐 아니라 서예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을 전환하는 계기도 마련하였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지속적인 전시회를 통해 우리 서예와 서화를 관람객에게 전달해왔다. 창작 활성화 및 서예 인구 저변확대를 위한 전문 서예인 양성 등을 목표로 서예강좌도 개설, 시행하고 있다.
딸과 함께 서예박물관을 방문한 날은 마침 대서예가 동농 김가진(1846~1922)의 전시가 열리는 첫 날이었다. 동농문화재단에서 마련하고 각계의 중진 인사들이 참여한 이번 '백운서경' 전시는 동농의 서예전으로 꾸며졌지만 김가진이라는 근대의 위인을 세상에 널리 올바로 알리자는 뜻이 있다고 한다.
동농은 독립협회 위원을 지낸 애국계몽 운동가로 대한제국 시기에는 중국어와 일본어에 능통한 외교관으로 활약했다. 이후 조선민족대동단 총재로, 중국 상해 임시정부의 국노(國老)로 추앙받은 분이다. 동농의 삶에서 가장 감동적인 것은 74세의 노구를 이끌고 허름한 늙은이로 변장하고 상해 임시정부에 합류한 것이다. 대한제국의 고위 대신이 임시정부에 동참했다는 것은 여느 인사가 들어온 것과는 차원이 다른 천군만마의 상징성이 있었다.
동농의 생애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그 후손들의 삶을 말하지 않을 수 없는데 2남 김정한, 3남 김의한, 며느리 정정화, 4남 김용한, 김의한과 정정화의 아들 김자동, 김용한의 아들 김석동 등 모두 독립운동가였다. 2013년 8월 광복절에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동농 김가진, 김의한, 정정화를 중심으로 한 가족의 독립운동 이야기로 엮은 특별전을 열기도 했다.
‘글씨는 그 사람과 같다(書如其人).’라는 말이 있다. 글씨를 쓰는 사람의 인품이 훌륭하면 글씨도 따라서 높이 평가되며 반대로 쓰는 사람의 인품이 좋지 못하면 글씨도 낮게 평가된다는 말이다. 무릇 글씨는 그 학문과 같고, 그 재능과 같고, 그 뜻과 같고 그래서 그 사람과 같다. 힘이 있으면서도 자연스러운 동농의 획을 보고 있자니 괜히 마음이 숙연해졌다. 두 층의 전시실을 둘러보고 나오면서 ‘나도 글씨를 제대로 써보자’고 붓펜을 잡고 방명록에 서명을 시도해보았지만 대가의 필세(筆勢) 앞에서 떨리는 손은 뜻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겉멋은 통하지 않았다. 그저 선대의 정신과 문화를 기리는 후손들의 정성에 깊은 경의와 함께 좋은 전시를 볼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을 간직한 채 전시실을 나왔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정갈한 한식 한상 차림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예정된 전시를 보기 위해 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애초에 예술의전당을 방문한 것은 노르웨이 표현주의 화가 뭉크(1863~1944)의 생애와 예술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특별전시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전에서 석판화 위에 뭉크가 직접 채색한 전 세계에 단 두 점 뿐이라는 ‘절규’를 보기 위해서였다.
‘절규’는 뭉크의 대표작으로 1893년 발표된 이후 다양한 표현 기법으로 복제되고 재탄생된 작품이다. 뭉크의 작품들 중 가장 표현성이 강하며, 널리 알려진 작품이기도 하다. 절규 이외에 다른 작품들 중에서는 뭉크의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주 수입원이 되었다는 초상화들이 인상 깊었다. 색채나 구도 면에서 안정적이고 편안해보였다.
모더니즘이 ‘객관적인 기호’의 체계라고 한다면 표현주의의 기법 중에는 ‘왜곡’이 있다. 뭉크는 내면의 우울함과 공포감을 극도로 왜곡된 형상으로 표현함으로써 보는 이들의 감성을 집요하게 자극하고 있다.
이런 곱지 않은 미감이 언제까지 세계인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을지 모르겠으나 수준높은 관람객들은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심미안이 있고 자정 능력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매스미디어에서 대서특필하는 홍보전을 펼쳐 관람을 권유하는 것은 관객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부분이 있다고 해서 폭력성이 강한 영화를 홍보하고 천만 관객을 동원해 흥행에 성공해보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는 것은 구주대란 속에서 평화롭지 않아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던 한 화가의 정신세계에서 비롯된 비명이 그냥 ‘절규’가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는 지구 곳곳의 분쟁과 전란들을 잠재울 수 있는, 한 사람의 ‘절규’를 넘어서서 전 세계인의 ‘울림’이 될 수도 있는 일말의 기대가 담긴 힌트를 주기 위해서가 아닐까.
필자의 억측이 졸하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동농과 뭉크의 전시회를 관람한 후에 나라 걱정하는 마음으로 인류애를 발휘하여 감상 후기를 작성함으로써 비록 미력이나마 그 기대에 힘을 더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