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사도광산의 배신
||2024.11.27
||2024.11.27
일본 니가타현에 제주도 절반 크기의 사도(佐渡)섬이 있다. 과거 대표적인 유배지였지만, 금과 은 등 광물이 매우 풍부해 17세기에는 세계 최대의 금 생산지였다. 도쿠가와 막부의 부를 채우는 금고인 셈이다. 사도광산이 우리에게 통한의 역사로 기억되는 건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면서 이곳이 군수물자를 공급하는 주요 기지가 되면서부터이다. 여기서도 전범기업 미쓰비시가 핵심 역할을 했다. 1500여 명의 조선인 노동자들이 끌려와서 혹독한 환경에서 강제노동했다. 생존자들의 증언을 보면 한마디로 노예 같은 강제노동과 인권유린의 현장이었다. 구체적인 명단도, 몇 명이 죽거나 다쳤는지도 모른 채 그냥 세월만 흘렀다.
일본은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노력을 집요하게 추진해왔다. 역사적, 산업적으로도 오늘의 일본을 일으킨 가치가 충분하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번번이 우리 정부의 반대에 부딪혔다. 강제동원과 인권유린을 숨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야 역사가 왜곡되지 않으며, 조선인 노동자들의 원혼이 조금이라도 위로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강제동원을 부인하는 일본이 이를 수용할 리 없다. 하지만 기회가 왔다. 납득할 수 없을 만큼 일본에 우호적인 윤석열 정부의 출범은 결정적인 기회가 됐다. 아니나 다를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가 지난 7월27일 인도에서 열린 제46차 회의에서 일본이 신청한 사도광산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최종 결정했다. 일본은 거대한 축제의 장이 되었다.
그렇다면 정부는 무엇을 했을까. 우리가 반대하면 사도광산 등재는 불가능했다. 정부는 강제동원 등 사도광산의 전체적인 역사를 반영해야 한다고 조건을 달았다. 그리고 한일 양국이 정부 차원의 공동 추도식도 열기로 했다. 우리는 이를 전제로 등재 결정에 동의한 것이다. 정부의 협상과정이 다소 찜찜하긴 했지만 정부의 발표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번만큼은 일본 정부도 약속을 지킬 줄 알았다. 그러잖아도 저자세 외교 논란에 있는 윤석열 정부를 일본이 배신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지난 24일 사도광산 추도식이 일본 현지에서 열렸다. 그러나 일본은 약속했던 강제동원의 역사를 빼버렸다. 게다가 일본 정부 대표는 극우 성향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차관급)이었다. 추도식이 아니라 기념식 같은 분위기였다. 일본은 당일 행사일정도, 정부 대표도 뒤늦게 알리는 등 우리 정부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이에 우리 정부가 별도의 추도식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일본이 되레 우리 정부에 강하게 유감을 밝혔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공식 반박은커녕 뒤늦게 그것도 마지못해 일본에 유감의 뜻을 전했다. 이것이 윤석열 정부가 내세운 한일관계 정상화의 현주소이다. 사도광산의 배신은 두고두고 한일관계에 큰 상처가 될 것이다. 이제 윤석열 대통령은 일본의 실체를 직시해야 할 때이다.
/박상병 시사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