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입시의 계절에
||2024.11.28
||2024.11.28
전국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났다. 곧이어 합격자 발표가 시작되면 희비가 엇갈릴 것이다. 나 역시 오래전에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안쓰러운 수험생 학부모 과정을 겪었다. 두 아들은 내 인생의 전부였다. 6·25전쟁으로 생후 보름 만에 부친을 잃었기에 나는 아버지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보고 배운 적이 없다. 하지만 내 인생의 모든 것을 걸었던 자식이기에 내리사랑의 본능이 눈을 떴다.
다섯 살 때부터 일기를 쓰게 했고 초등학교 월말 고시엔 두 아들과 함께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큰아들은 교과서 한 권을 글자 한 자 틀리지 않고 암기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녀오면 약국 안 커다란 책상 앞에 앉아 복습과 예습을 시키고 문제지를 풀게 했다. 승용차로 학교에 태워다 주며 차 안에서 동화책을 읽게 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올 때까지 문제집을 채점하고 틀린 문제를 요점 정리해 놓았다. 부족한 체육 활동은 캠코더를 들고 학교에 가 촬영한 후 반복해 보여주었다. 치맛바람이 아닌 바짓바람이었다.
초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중고등학교 성적도 손가락을 꼽을 정도였기에 서울대학은 떼놓은 당상이라고 자타가 장담해 온 터였다. 그러나 고3이 되면서 방황했다. 평소에 멀리하던 여학생을 사귀며 금쪽같은 시간을 허비했다.
숱한 역경을 인내해 오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오점을 남긴 아들이 원망스러워 얼굴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란히 어깨를 겨누며 경쟁하던 친구들이 일류 대학에 합격한 것을 의식하며 의기소침해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는 부모의 가슴은 더 미어지는 듯했다. 그것은 끝도 없는 무지갯빛 욕망 때문이 아니라 나보다 더 훌륭한 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부모의 공통된 소망 때문이리라!
큰아들은 모대학 기계공학과를 포기하고 서울대에 진학하겠다며 재수를 택했다. 수능 점수가 나오자, 각종 통계 자료를 참고해 내가 직접 진학 상담사 역할을 했다. 수험생의 적성과 미래 전망보다 농과대학이라도 서울대 합격자 기록을 남기려는 진학 지도에 공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재수가 반드시 성적 상승을 보장하지 않기에 서강대학 기계공학과에 만족해야 했고 현재 S그룹에 출근하고 있다.
작은아들은 형처럼 두각을 보이지 않았지만, 철학가의 예언처럼 순탄대로의 길을 걸었다. 모대학 의대에 수시 전형으로 합격했지만, 지방이 싫다며 서울대 물리학과 등록을 고집했다. 연구직보다 전문직 의사가 낫다고 주변 친지들을 동원해 어르고 달랬지만 듣지 않았다. 뒤늦게 연세대 치과대학에서 추가 합격 발표가 나왔다. 이곳조차 관심 밖이었던 아들의 마음을 돌린 것은 “신촌의 낭만을 즐겨보고 정 싫으면 다시 서울대로 돌아가라”는 마지막 당부 때문이었다. 세월이 흘러 수험생의 학부모가 된 작은아들은 이제야 제 아비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 같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하는 입시의 계절이다.
/김사연 수필가 전 인천문인협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