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재속 웃음기 사라진 이재용·최태원, 강도 높은 쇄신 시동 [결산 2024]
||2024.12.17
||2024.12.17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올해 대내외 경영환경 악화 속에 법정 싸움까지 벌이며 어느 때보다 힘겨운 시기를 보냈다. 이재용 회장은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의혹 관련 재판을 여전히 진행하고 있다. 최태원 회장은 천문학적 재산분할이 걸린 ‘이혼소송’을 이어가며 고비를 넘겨야 했다. 그럼에도 두 회장은 각 그룹의 경영 전환점을 맞아 ‘원포인트’ 인사를 단행하며 강도 높은 쇄신에 나섰다. 또 직접 글로벌 현장을 누비며 사업 경쟁력 강화에 힘을 보탰다.
끝나지 않은 오너리스크
올해 삼성과 SK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는 ‘오너리스크’다. 이재용 회장은 부당합병과 회계 부정 등에 관여했다는 혐의로 수년째 재판을 받고 있다. 최태원 회장도 이혼소송이 진행 중이다. 재판이 장기화할수록 그룹 경영 전략에 부담도 커진다. 재계에선 뒤숭숭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이재용 회장의 경우 2017년부터 시작된 사법리스크가 현재까지도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자본시장법 위반,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은 올해 초 1심에서 모두 무죄를 받았지만, 검찰의 항소로 2심까지 재판이 이어졌다. 그는 대리인을 법정에 보낼 수 있는 상황에서도 불가피한 상황을 제외하고 총 101번 재판에 참석하며 책임감있는 모습을 보였다.
검찰은 올해 11월 진행된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징역 5년과 벌금 5억원을 구형했다. 항소심 선고기일은 내년 2월 3일이다. 재판결과가 1심과 같이 무죄가 나올 경우 이 회장은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다. 하지만 실형이 선고되면 삼성은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회장의 사법리스크가 지속되는 동안 삼성의 빅딜 시계는 멈췄고, 인력 유출과 경쟁력 저하가 발생하며 삼성 안팎에선 ‘위기론’이 불거진 상태다.
최태원 회장도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으로 경영리스크에 휩싸였다. 2심 재판부가 1심 재산분할액 665억원과 비교해 20배나 뛴 1조3808억원과 위자료 20억원을 선고하면서다.
재계에선 항소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될 경우 최 회장의 SK그룹 경영권이 흔들릴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놨다. 최 회장은 그룹 지주사인 SK(주) 지분 17.7% 등을 보유하고 있는데, 판결 확정시 재산분할금 마련을 위해 해당 주식 매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다만, 대법원이 이혼 소송 상고심 심리를 이어가기로 결정하면서 SK는 지분 매각 등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게 됐다. 최 회장은 대법원에 공이 넘어간 만큼 각 사업 점검과 리밸런싱 최적화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글로벌 기업들은 오너리스크가 해소돼야 사업 전략 등에서 안정적으로 예측 가능하게 움직일 수 있다”며 “이런 법적 리스크가 해소되면 총수들의 운신의 폭도 더욱 넓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례적 연중 인사…CEO 물갈이로 위기돌파 승부수
삼성과 SK는 인사철도 아닌 때 기습적으로 ‘원포인트 인사’를 실시하며 조직 내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반도체를 비롯한 주요 사업부 수장을 교체한 것이 대표적이다. 실적 부진과 함께 글로벌 불확실성이 장기화되면서 대표이사의 ‘수시 교체’라는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올해 5월 이례적으로 DS부문장을 교체했고 구원투수로 전영현 부회장을 투입했다. AI 핵심 칩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주도권을 SK하이닉스에 내주면서 위기감이 고조되자 원포인트 인사를 통해 돌파구 마련에 나선 것이다. 또 HBM개발팀을 부활시키고 D램 설계 전문가인 손영수 부사장을 책임자로 발탁했다.
연말 정기 인사에서도 메모리사업부장에 새로운 인물이 발탁될거라는 재계 예상을 깨고 전 부회장에게 권한과 인력을 몰아주는 파격적인 인사를 실시했다. 이외에도 수조원의 적자를 내던 파운드리사업부장을 교체하고 한진만 사장을 투입하는 등 반도체 근원적 경쟁력 회복에 초점을 둔 인사를 단행했다.
SK그룹은 올해 6월 최재원 수석부회장을 SK이노베이션 신임 수석부회장으로 앞세웠다. 또 유정준 SK미주대외협력총괄 부회장을 SK온 신임부회장으로 선임했으며, SK에코플랜트 사장 자리엔 김형근 SK E&S 재무부문장을 앉혔다.
이외에도 한명진 SK스퀘어 사장, 김종화 SK에너지 사장, 최안섭 SK지오센트릭, 이상민 SK아이이테크놀로지 사장 등을 연중 인사를 통해 새로 선임했다. SK그룹은 ‘안정적 변화 관리’를 위해 올해를 '수시 인사'의 원년으로 삼고 연중 인사를 지속한다는 방침이다.
글로벌 광폭 행보도 지속
이재용 회장과 최태원 회장은 미래 사업 전략 마련을 위해 글로벌 현장 경영도 지속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 등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내년 사업 흐름을 들여다보고 미래 전략을 점검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이 회장은 2024 파리올림픽 기간 유럽 출장을 떠나 갤럭시Z플립6 마케팅에 힘을 싣는 한편,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닐 모한 유튜브 CEO, 데이브 릭스 일라이릴리 CEO,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 등 글로벌 기업인과 회동하며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4월엔 독일 오버코헨에 있는 자이스 본사를 방문해 칼 람프레히트 CEO를 만나기도 했다. 자이스는 ASML의 EUV 장비에 탑재되는 광학 시스템을 독점 공급하는 기업으로 반도체 업계 ‘슈퍼 을’로 꼽힌다. 이외에도 올해 2월 국내에서 마크 저커버그 CEO와 회동했으며, 6월엔 미국 동서부를 오가며 아마존, 퀄컴 등 IT·AI·반도체 분야 주요 빅테크 CEO와 잇따라 만났다.
이재용 회장은 미국 출장 일정을 마치며 “삼성의 강점을 살려 삼성답게 미래를 개척하자”고 강조했다.
최태원 회장도 AI 반도체 기업으로서 입지를 굳히기 위해 글로벌 네트워킹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는 4월 젠슨 황 엔비디아 CEO, 6월 웨이저자 TSMC 회장과 연달아 회동하며 3자 동맹을 굳건히했다. 또 마이크로소프트와 오픈AI, 아마존, 인텔 등 글로벌 빅테크 CEO들과 연이어 회동하며 AI 반도체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최 회장은 6월 대만 출장길에서 “인류에 도움되는 AI 시대 초석을 함께 열어가자”고 전하며 SK그룹이 추구하는 AI 분야 방향성을 강조했다.
박혜원 기자
sunon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