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남태령 월치전
||2024.12.23
||2024.12.23
우금치는 공주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해발 100m 남짓인데, 해 떨어지면 도둑이 들끓어 소를 끌고 넘어가지 못하게 하였다고 하여 우금(牛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갑오년(1894년) 12월 초 동학농민군은 우금치를 넘어 공주로 진격하려다가 일본군 개틀링 기관총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130년이 지난 갑진년(2024년) 12월22일 오후 4시44분 전국에서 올라온 농민 트랙터 10대가 남태령 경찰 기동대 차벽을 돌파했다. 토요일부터 32시간 대치 끝에 길이 열렸다. 남태령 대치가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지 궁금하다. '2024년 우금치'라는 명명이 그럴듯하다.
남태령의 별칭 가운데 하나가 쉬네미 고개다. 해발 180m 정도인데, 대낮에도 도적 출몰이 잦아 쉰 명은 모여야 고개를 무사히 넘을 수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전국에 스무네미, 쉬네미가 수두룩하지만 남태령은 특히 유명했다. 삼남에서 서울로 가는 길목인 탓이다. '남태령 옛길' 초입에 주막이 있어, 길손들이 여기서 쉰 명이 찰 때를 기다렸다 한다. 동네 장정들은 나그네 일행을 안내해 주고 고개넘잇돈(월치전)을 받았다.
갑오년 우금치에서 달랑 죽창 들고 기관총을 향해 돌진하다 무더기로 쓰러져간 농민들은 비장했다. 한파 속에 남태령으로 속속 모여든 갑진년 사람들도 처음엔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언제 경찰이 강제해산에 나설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추위 속에서도 생기와 발랄함을 잃지 않았다. 1000명이 모여 농민들과 트랙터를 지켰고, 날이 밝자 3만 명까지 늘어났다. 난방버스를 비롯해 핫팩과 먹을거리가 고개로 답지했다. “…강물에 넘칠 눈물 속에 우리 같이 있지 않나…우린 노래해 더 나아질 거야…” (크라잉넛, '좋지 아니한가')
남태령 대치가 민주주의로 가는 마지막 월치전이었으면 좋겠다. 우금치부터 헤아리면 지난 130년간 역사의 고비마다 너무 많은 희생을 치렀다. 역사의 고비를 넘어가기 위한 비용치고는 지나치게 과했다. 사실, 경찰이 남태령을 막을 명분이 없었다. 트랙터를 막아서는 바람에 30여 시간 길만 완전히 막혔을 뿐이다. 충돌을 유도하려고 일부러 막은 게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었으나, 결국 농민이, 시민이 무사히 뚫어냈다. 30여 시간 경찰과 대치하면서 이렇게 평화롭게 시위를 이어갈 수 있는 나라가 또 있을까. 'K-민주주의'의 저력을 생중계로 실감했다. '시간끌기'에 들어간 세력만 이를 부인한다.
/양훈도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