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동에서] 모리스 창, TSMC 그리고 삼성의 위기
||2024.12.23
||2024.12.23
“TSMC는 경쟁자가 없습니다. 우리는 주문받은 전 세계 인공지능(AI) 반도체 고객 제품을 예정대로 출시할 것입니다.”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대만 TSMC 창업자인 모리스 창이 최근 자서전 기념 기자회견에서 꺼낸 말이다. 파운드리 시장에서 2위 삼성전자를 멀리 따돌리고 1위를 달리고 있는 TSMC를 세운 인물이 '독주'를 예고한 말이니 가볍게 볼 수 없다.
모리스 창과 삼성전자는 이래저래 인연이 깊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은 한때 모리스 창에게 삼성의 반도체를 맡기려고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모리스 창은 이건희 회장의 제안을 뿌리치고 TSMC를 키우는 데 공을 들였다.
모리스 창은 늘 삼성을 염두에 두고 보이지 않는 전쟁(?)을 벌여왔다. 삼성은 메모리 분야에서 전 세계를 호령했지만, TSMC는 메모리를 포기하고 파운드리를 조용히 키웠다. 삼성이 파운드리 사업 본격 진출 선언에도 쌓아온 기술력과 함께 폭넓은 인맥(중화권)을 통해 시장을 주도했다.
모리스 창은 2021년 한 강연에서 “TSMC의 유일한 경쟁자는 미국과 중국이 아닌 삼성이 유일하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삼성과 TSMC 모두 인재 수준이 높고, 관리 인력도 자국 내에 있기 때문이라며 삼성을 높게 평가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모리스 창의 자서전 기자회견은 이젠 삼성이 경쟁자가 아니라고 선언한 셈이다.
그는 지난해 한 공개 인터뷰에서 그는 “TSMC의 독주는 20~30년 지속할 수 없다”고 전망하면서 “그 위기는 경쟁기업 등 외부 도전이 아닌 가늠하기 어려운 기술력의 한계가 촉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제 모리스 창의 머릿속에는 삼성이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삼성이 TSMC와 경쟁을 위해 선도적으로 도입한 케이트올어라운드(GAA)의 기술력 부족도 언급했다. 삼성으로선 자존심 상하고 조롱(?)으로 느꼈을 수도 있는 일이다.
최근 모리스 창은 “계엄 사태로 촉발된 한국의 혼란스러운 상황이 삼성 경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탄핵 사태가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경쟁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본 것이다. 국가대표 기업 삼성에 부정적인 영향이 미친다면 대한민국 경제도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은 계엄 사태 여파로 불확실성이 커진 한국 경제가 세계적인 AI붐에 올라탄 대만에 크게 뒤처질 수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지금도 한국 증시는 대만보다 시가총액이 1조 달러 가까이 뒤처져 있다. 탄핵사태가 조만간 마무리되기 어려운 상황이니 그 격차는 더 벌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내년 1월20일이면 한국 경제에 결코 도움이 안 되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게 된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은 미·중 무역분쟁과 트럼프의 관세 직격탄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우리나라 수출과 흑자의 20%가량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 반도체산업이다. 삼성과 반도체산업이 경쟁력을 잃으면 우리 경제가 경쟁력을 잃는 것이다. 원·달러 환율은 1450원을 뚫었다 내려왔다. 원자재를 수입해야 하는 산업이다 보니 부담이 이만저만 아니다.
정부와 손발을 맞추고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하지만 통상이나 외교는 동력을 잃어버린 상태다. 곳곳에 가시밭길이 널려 있다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지 걱정만 앞선다. 그렇다고 물러설 수도 없다.
입에 발린 말이지만 위기 뒤엔 기회가 있다고 했다. 삼성이 어렵기는 하지만 넘볼 수 없는 저력이 있다. 그러나 위기를 극복한다고 거창한 처방을 찾다 보면 시간만 허비할 수도 있다. 지금은 잘나가던 시절 좋은 기억을 살려 기본을 탄탄하게 다듬을 때다.
/이완식 H&J산업경제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