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민주주의의 퇴조
||2024.12.25
||2024.12.25
최근 정치학계에서는 민주주의, 혹은 자유민주주의의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포퓰리즘이 득세하고 민주주의를 지탱했던 가치와 제도, 체제가 무너지고 있다는 경고이다. 민주주의 연구의 석학인 미국 스탠퍼드대 다이아몬드(L.J.Diamond) 교수는 이를 '민주주의의 퇴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 1기 출범을 보면서 미국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기'로 빠져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의 경고대로 트럼프 행정부 1기는 미국민주주의에 대한 폭력에 다름 아니었다. 그랬던 트럼프가 다시 돌아와서 내년 1월 트럼프 행정부 2기를 준비하고 있다. 이제 미국민주주의는 위기보다 더한 상황에 직면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우려보다 불안이 앞서는 대목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막연하게 '민주주의의 성숙'이니 또는 '공고화'니 하면서 과잉 해석할 일이 아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한국민주주의에 대해 매우 우려하는 목소리를 냈다. 견제와 균형이 아니라 다수당 폭주에 대한 경고였다. 결국 문재인 정부는 윤석열을 탄생시킨 주역이 되었다. 민주화 이후 5년 만에 정권을 뺏긴 것은 그 때가 처음이다. 이렇게 탄생한 윤석열 정부는 집권 절반을 갓 넘긴 시점에서 비상계엄선포로 인해 국회 탄핵으로 헌재에서 심리가 진행 중이다.
윤석열은 헌재의 탄핵심판 외에도 공수처 등 사법기관에서 내란죄 피의자가 되었다. 심지어 북풍을 유도했다며 외환죄 혐의까지 받고 있다. 이에 동원된 군 지휘자 등 다수가 구속되었거나 수사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비상계엄 사태는 지금 제대로 출구를 찾은 것일까. 전 세계가 응원하듯이 한국민주주의의 저력과 회복력이 확인된 것일까. 그래서 이대로 안심해도 괜찮을까. 그러면 좋으련만 낙관은 금물이다. 우리는 이번 비상계엄 사태를 보면서 무엇보다 허약한 한국민주주의의 이중적 특징과 한계를 적나라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 먼저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적 기반은 역시 탄탄했다. 장갑차를 맨 몸으로 막고 계엄군의 총구도 손으로 막았다. 국회 앞 도로는 계엄 해제를 요구하는 민심의 바다였다.
그러나 권력의 상층부는 수준 이하였다. 대통령의 황당한 정세인식을 제어할 견제장치는 무력했다. 국무회의는 도구에 불과했다. 예비한 계엄이었지만 군당국은 이를 제어하지도, 아니 알지도 못했다. 대통령과 일부 얼빠진 정치군인들이 결심만 하면 무장한 군인들이 국회로 난입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그 이후도 마찬가지이다. 탄핵된 대통령이 관저에서 버티며 법치를 짓밟아도 속수무책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억지와 궤변이 난무하며 다시 무한 정쟁과 대치 정국으로 이어질 태세이다.
한국정치의 현실은 '산 넘어 산' 그 자체이다. 자칫 이번 비상계엄 사태가 한국민주주의의 퇴조로 이어지는 변곡점이 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고 답답하다.
/박상병 시사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