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아니면 갈 곳 없다”… 새벽 5시 30분, 고령층, 첫차에 몰려드는 ‘이유’
||2025.04.17
||2025.04.17
“서류 봉투 하나 배달하고 9천 원 벌었어요. 그래도 다행이죠.”
이른 새벽 5시 30분, 서울 지하철 까치산역. 75세 최진규 씨는 첫차를 타고 오장동 실버퀵 사무실로 향했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일감을 기다린 지도 2년째다. 운이 좋아야 아침 일찍 한 건이라도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 더 큰 걱정은 따로 있다. 최근 불거진 지하철 무임승차 연령 상향 논의 때문이다.
최 씨와 함께 일하는 실버퀵 택배원은 “무임승차 안 되면 배달은커녕 출근조차 어렵다. 회사에 수수료 내고 지하철비까지 내면 남는 게 없다”라고 토로했다.
서울 중구 오장동에 위치한 ‘실버퀵’ 사무실에는 매일 아침 30여 명의 고령 배달원들이 몰려든다.
이들은 선착순으로 일거리를 배정받는다. 인천에서 첫차를 타고 오는 71세 최모 씨는 오전 10시가 되어서야 겨우 첫 배달을 나설 수 있었다.
서울 시내 퀵요금은 1만 3천 원 선으로, 오토바이 퀵서비스보다 저렴하다. 고객들의 만족도도 높은데, 한 고객은 “어르신들이 직접 와서 물건을 전달해주니 더 믿음 간다”고 말했다.
전국적으로 실버택배 업체는 600곳이 넘으며, 일부 업체는 백화점 간 상품 재고를 교환하는 특수 배송까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하루 벌어들이는 수입은 평균 2만~3만 원 내외에 불과하다.
하지만 수요는 꾸준하고, 업체 측도 “어르신들이 친절하고 책임감이 강해 고객 만족도가 높다”고 밝혔다.
실버퀵 기사는 건당 운임을 받지만, 이 중 30~40%가 수수료로 빠져나간다. 일반 퀵서비스 평균 수수료율보다 두 배 가까이 높은 수준이다.
70대 기사 A씨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루도 안 쉬고 일해도 100만 원도 못 버는 사람이 태반”이라고 털어놨다.
게다가 고용 형태도 불안정하다.
일부 업체는 고용계약서를 작성해 4대 보험 혜택을 받지만, 나머지 업체는 개인사업자로 등록돼 있어 산재보험조차 적용되지 않는다. 지하철 계단에서 넘어져도 치료비는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고령자들이 이 일을 이어가는 이유는 단 하나, 생존이다.
실버퀵 관계자는 “다른 데선 나이 많고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거절당하지만, 우리는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서울시에서 지하철 무임승차 연령을 65세에서 70세로 올리자는 논의가 시작되면서, 실버택배 노인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노인 기준을 재조정하자는 여론에 따라 정책도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가 발표한 ‘2024 서울서베이 도시정책지표조사’ 결과에 따르면, 시민 절반 이상은 ‘노인’의 기준을 70세 이상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정년 연장이나 노인 복지 제도 전반에 대한 개편 논의도 함께 진행 중이다.
하지만 실버택배 종사자들에게 무임승차 폐지는 곧 교통비 부담 증가로 직결된다. 전문가들은 제도 개편 시, 생계를 위해 일하는 노인들의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화여대 정순둘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나이 기준뿐 아니라 소득이나 출퇴근 시간 등을 고려한 차등 적용 방식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역시 “해외 사례처럼 출퇴근 시간에는 무임승차를 제한하고, 소득 기준을 반영하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노인의 경제활동 참여율은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이들이 설 자리는 여전히 좁다.
하루 2만 원을 벌기 위해 새벽을 여는 이들의 현실은 단순한 노인 복지 문제를 넘어선 생존의 문제다.
정부와 지자체는 노인 기준 연령 조정과 같은 제도 개편 논의에 앞서, 취약계층 노인들이 최소한의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