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노인 매일 어디 가나 했더니”… 수십만 명 줄 서는 ‘이곳’, 우리 동네에도 생긴다는데
||2025.05.02
||2025.05.02
“내 나이 이제 일흔이 넘었지만, 집에만 있자니 하루가 너무 길더라.”
서울 여의도에 사는 김 모 씨(72)는 최근 집 근처 주간보호센터에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엔 마냥 낯설었지만, 지금은 친구도 생기고 하루 일과도 생겨 오히려 활력이 생겼다.
‘노(老)치원’이라고도 불리는 주간보호센터는 단순한 돌봄 공간이 아니다.
익숙한 동네를 떠나지 않고도 돌봄과 여가, 교육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이 공간은 새로운 노후 생활 방식으로 빠르게 자리잡고 있다.
특히 서울시가 재건축 단지마다 ‘데이케어센터’ 의무화에 나서면서, 이런 시설은 도심 곳곳으로 확대되는 중이다.
서울시는 지난해부터 재건축 단지에 ‘데이케어센터’를 포함하도록 한 ‘단계별 처리 기한제’를 도입했다.
일정 시한 내 복지시설을 확보하지 않으면 신속통합기획 자체가 무산될 수 있는 이 제도는, 곧 재건축 사업의 핵심 조건으로 자리 잡았다.
여의도 시범아파트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서울시가 정비계획에 데이케어센터 건립을 포함시켰지만, 일부 주민의 반대로 1년 넘게 결정고시가 지연됐다.
이에 대해 오세훈 서울시장은 “복지를 외면하는 재건축은 없다”며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이런 기조는 서초 진흥아파트, 양천 목동 14단지 등 다른 재건축 지역에도 확산 중이다. 도심 한복판의 커다란 아파트 단지에 ‘노치원’이 속속 들어서는 것이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아이들이 뛰놀던 유치원은 저출생과 고령화 현상으로 인해 노인들의 돌봄공간으로 바뀌었다.
노인들은 매일 셔틀버스를 타고 이곳에 도착해, 색칠놀이와 율동을 즐기며 하루를 보낸다.
지난 10년간 줄어든 어린이집·유치원 수는 약 28%에 달하는 반면, 노인복지시설은 같은 기간 27% 늘었다. 심지어 일부 교육기업들은 이 같은 흐름에 발맞춰 실버 사업에 적극 진출하고 있다.
‘눈높이’로 유명한 대교는 노치원 사업을 전담하는 자회사를 설립했고, 구몬은 노인을 대상으로 한 학습지를 개발해 주 1회 교사가 방문하는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서울시교육청 역시 폐교를 실버타운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조례를 개정했다. 이제 학교가 사라진 자리에는 노인복지시설이 들어서는 시대다.
폭증하는 수요에 따라 요양시장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동안 영세업체 위주였던 데이케어센터 시장에 교육기업, 보험사, 건설사 등 대기업들이 속속 진입하고 있다.
2023년 기준 전국 데이케어센터는 약 3400곳, 입소 정원은 12만 명을 넘겼다. 2019년과 비교하면 시설 수는 87%, 정원은 134%나 늘어난 수치다.
장기요양등급을 받은 노인은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지원을 받아 저렴한 비용으로 센터를 이용할 수 있으며, 본인부담금은 전체 비용의 15% 수준이다.
대기업들은 이 시장을 장기적인 수익 모델로 보고 있다.
식사·간병 수요는 물론, 보험·부동산 사업과의 연계 가능성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 더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노인 10명 중 9명은 “가능하면 지금 사는 집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답한다. 아파트 구조는 실버타운 못지않은 편의성을 갖추고 있고, 데이케어센터가 결합되면 돌봄도 가능해진다.
급속한 고령화 속에 노인의 삶의 질을 보장하려면 지역사회 기반의 돌봄시설 확대가 불가피하다.
노인 시설은 이제 일부 노인들만을 위한 특별한 공간이 아니라, 빠르게 다가오는 고령 사회에서 우리 모두가 이용하게 될 일상적인 복지 시설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