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동안 어떻게 살라고”… 954만 명 우르르 몰리자 5060 ‘초비상’
||2025.05.04
||2025.05.04
“정년퇴직 후, 뭘 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다시 일을 해야 할 것 같아서 학원에 등록했어요.”
서울 노량진의 한 자격증 학원은 평일 오후임에도 교실 안은 중년 수강생들로 가득하다. 최 모 씨(58) 역시 지난 재작년 정년퇴직 후 노후를 위해 다시 책상에 앉았다.
노후 준비가 부족했던 그는 “요즘은 100세 시대라는데, 정년 후 30년은 어찌 살아야 하나 싶다”며 한숨을 내쉰다.
이제는 젊은이들만의 공간이던 학원가에 5060세대가 다시 몰리고 있다. 954만 명에 달하는 2차 베이비부머들이 올해부터 대거 은퇴 연령에 진입하면서 재취업 시장에 초비상이 걸렸다.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가 최근 발표한 ‘2차 베이비부머 직장인의 은퇴 후 인식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의 90%가 “10년 안에 현재 직장에서 퇴직할 것”이라 답했다.
문제는 그 다음인데, 퇴직 이후에도 재취업이나 창업으로 소득을 이어가겠다는 응답자가 83.6%에 달했으나, 실제로 재취업에 ‘자신 있다’고 밝힌 사람은 27.9%뿐이었다.
대부분이 생계비 마련을 이유로 다시 일자리를 찾아야 하지만, 가능성은 낮다고 본 셈이다.
응답자의 절반 가까이(48.3%)는 “필요한 자산의 절반도 준비하지 못했다”고 털어놨고, “80% 이상 준비했다”고 답한 사람은 고작 13.3%에 불과해 은퇴자산 준비도 열악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전체 자산 중 금융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17.2%에 불과했고, 실물자산(주택 등)이 82.8%를 차지했다.
2차 베이비부머 세대는 학력이 높고 사무직 비중이 크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이들 중 44.6%가 전문대 이상 학력을 지녔고, 직종도 전문가(18.4%), 사무직(15.4%)이 많다.
문제는 이런 경력이 은퇴 후 재취업에선 오히려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점이다.
2023년 고용보험 데이터를 보면, 사무·서비스직의 69.5%가 재취업 시 전혀 다른 업종으로 옮겨갔다. 익숙한 경력을 살리는 대신, 생소한 분야로 전향해야 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세 가지 방향의 재취업 지원책을 내놨다.
먼저 재취업을 위한 자격증 훈련으로, 한국폴리텍대학의 중장년 특화 과정 규모를 올해 7500명으로 늘렸다. 지게차, 전기공, 냉동기계 관련 자격증 취득을 지원해 새로운 일자리를 찾도록 돕는다.
사무·서비스직 중장년을 위한 경력전환형 일자리도 마련된다.
고용부는 지난해부터 호텔 객실점검원, SW테스터 같은 중장년 맞춤형 직종을 알선해 왔으며, 앞으로 3년간 대학 및 연구기관과 협력해 6000개 일자리를 추가로 창출할 계획이다.
세 번째는 경력이음형 모델인데, 네이버나 시중은행 등에서 현장훈련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기존 경력을 끊지 않고 잇는 방식이다.
노량진 학원가에도 변화가 뚜렷하다. 중장년층 수강생이 몰리며 자격증 강좌 수가 최근 2~3년 새 50% 넘게 증가했다는 것이 현장의 설명이다.
에듀윌 부동산 아카데미 심유순 원장은 “정년 후 새로운 삶을 준비하려는 50·60대가 부쩍 늘었다”며 “강좌 수요에 맞춰 커리큘럼도 계속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령자고용촉진법상 대기업에만 적용되는 재취업 지원 규정, 어겨도 사실상 제재 없는 현실도 문제로 지적된다.
또한 재취업 지원 대상이 정년퇴직, 사업장 폐업 등으로 한정돼 있어 근로자들이 지원을 꺼리는 경우도 많다.
954만 명의 2차 베이비부머가 본격적으로 은퇴하는 지금,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명확해지고 있다.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제도 정비와 함께, 사회 전반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