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의 파리지옥’ 90년 전 국내서 자취 감추더니 세계적으로 멸종한 식충식물
||2025.05.31
||2025.05.31
1935년 경북 영천에서 마지막으로 채집된 이후 자취를 감춘 식충식물 벌레먹이말(Aldrovanda vesiculosa)이 다시는 국내에서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 식물은 끈끈이귀개과 벌레먹이말속의 유일종이며 뿌리 없는 부유성 수생식물이다. 환경 변화에 극도로 민감한 특성을 보인다.
벌레먹이말은 과거 한국 전역은 물론, 일본, 호주, 유럽 중남부, 아시아,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넓은 지역에 분포했던 것으로 보고돼 왔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1935년 영천에서 마지막 채집 기록을 남긴 이후 다시 관찰되지 않으며 현재는 야생에서 완전히 사라진 상태다.
국립수목원과 국립생물자원관 등 관련 기관과 전문가들은 벌레먹이말을 야생 멸종(Extinct in the Wild, EW) 혹은 멸종(Extinct)으로 분류하고 있다. 실제로 2009년 국립수목원은 ‘한국 희귀식물 목록집’을 통해 벌레먹이말을 포함한 4종을 국내 첫 야생멸종식물로 올린 바 있다.
이 식물은 주로 늪, 호수, 하천과 같은 물 흐름이 거의 없는 고인 물에서 살아간다. 생존 조건이 까다로운 만큼 서식지의 물리적·화학적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물속에서 뿌리 없이 자라며 줄기와 가지가 물에 떠다니는 형태로 생장을 지속한다. 줄기는 대체로 6~25cm 정도이며 가늘고 약간 갈라진 가지를 가진다. 마디마다 6~8장의 잎이 돌려나고 있으며 잎은 콩팥 모양의 타원형으로 조개껍데기처럼 열고 닫히며 먹이를 포획한다.
벌레먹이말은 '물속의 파리지옥'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독특한 식충 방식을 지닌다. 잎의 끝에는 4~8개의 털 모양 돌기, 이른바 감각모가 달려 있어 곤충이 접촉하면 약 1/50초의 빠른 반응으로 잎을 닫아 벌레를 포획한다. 포충엽 내부에는 20~40개의 감각모가 밀생해 있어 외부 자극에 극도로 민감하며 포획된 벌레는 닫힌 잎 안에서 소화액을 통해 분해, 흡수된다.
생식 구조 또한 독특하다. 벌레먹이말은 8월경 잎겨드랑이에서 흰색 또는 녹색의 작고 수수한 5수성 꽃을 피운다. 꽃잎 길이는 3~4mm에 불과하며 꽃이 진 뒤에는 꽃자루가 꼬부라져 물속으로 들어가며 열매를 맺는다. 열매는 물속에서 익고 그 안에는 검은색 씨앗이 6~8개 들어 있다. 겨울에는 줄기나 가지 끝에 잎이 둥글게 모여 살눈 형태로 월동한다. 이러한 방식은 혹독한 계절에도 생존을 이어가기 위한 적응 전략으로 볼 수 있다.
벌레먹이말이 사라진 주요 원인으로는 서식지의 파괴가 가장 크게 지목된다. 늪과 호수, 하천 등 고인 물이 줄어든 것은 물론이고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한 매립, 개발, 수질오염 등이 서식지의 생태환경을 급격히 악화시켰다.
국립생물자원관 등은 벌레먹이말이 극히 제한된 조건에서만 생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러한 환경 변화가 멸종의 핵심 요인이 됐다고 본다. 여기에 농업 및 산림 개발, 비료와 살충제의 과다 사용 등으로 인한 생태계의 급변 역시 이 식물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기후 변화로 인한 생태계 전반의 변화도 빼놓을 수 없다. 습지의 건조화, 수온 상승, 강우 패턴의 변화 등은 벌레먹이말처럼 민감한 생물종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복합적 원인으로 인해 벌레먹이말은 더 이상 한국 야생에서는 볼 수 없는 식물이 됐다.
국제적으로도 벌레먹이말은 위기(EN, Endangered) 또는 지역적으로 야생멸종(EW) 등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도 생존이 위태로운 종으로 분류된다. 국내외의 생물다양성 보호 단체들은 이 식물의 보전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으나 자생지의 완전한 소멸과 복원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에 복원 가능성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벌레먹이말 외에도 한국에서 자생하는 대표적인 식충식물에는 끈끈이주걱, 끈끈이귀개, 통발, 벌레잡이제비꽃 등이 있다.
끈끈이주걱은 끈끈이귀개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햇볕이 잘 드는 습지에서 자란다. 잎은 뿌리에서 방석 모양으로 퍼지며 잎자루 끝에 주걱 모양의 잎이 달려 있다. 잎 표면에는 빨간 털(선모)이 빽빽이 나 있고 끝에서 끈적한 점액을 분비해 곤충을 붙잡아 소화한다. 6~8월에 6~20cm 꽃대가 올라와 흰 꽃이 핀다. 한국, 일본, 유럽, 북미 등 북반구 온대에 널리 분포하며 한방에서는 기관지염 치료에 사용된다.
끈끈이주걱과 같은 속의 식충식물인 끈끈이귀개는 주로 고산 습지나 늪지대에서 자란다. 잎은 길쭉하고 끝이 뾰족하며 표면에 선모가 많아 끈적한 점액으로 곤충을 잡는다. 꽃대는 10~30cm로 자라며 흰 꽃이 피고 열매는 삭과로 익는다. 잎이 주걱보다 길고 서식지가 더 제한적이다. 주로 북반구 고산지대에 분포하며 한국에서는 제한된 지역에서 발견된다.
통발은 통발과에 속하는 수생 또는 육상 식충식물이다. 잎이나 줄기에 작은 통(포충낭)이 달려 있어 이 통 속으로 물과 함께 작은 동물을 빨아들여 소화한다. 뿌리가 없고 물속이나 습지에 떠다니며 생활한다. 꽃은 노란색이나 보라색으로, 여름에 피며 종에 따라 형태가 다양하다. 한국에는 여러 종이 자생하며 주로 늪이나 연못 등에서 볼 수 있다.
벌레잡이제비꽃은 제비꽃과(또는 벌레잡이제비꽃과)에 속하는 식충식물로, 주로 습한 바위틈이나 습지에서 자란다. 잎은 두껍고 윤기 나며 표면에 점액을 분비하는 샘털이 있어 곤충을 붙잡고 소화한다. 꽃은 제비꽃처럼 보라색 또는 흰색으로, 봄에 피며 관상 가치가 높다. 한국에는 몇 종이 자생하며 주로 산지 습지나 습한 바위 지대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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