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살리려다 어르신들 죽어간다”… 세계 최악의 현실에 전문가도 ‘일침’
||2025.06.30
||2025.06.30
전북 장수의 한 마을에서 농수로를 정비하던 80대 남성이 추락해 숨졌다. 같은 날 현장에 있던 다른 노인들도 별다른 안전장비 없이 일을 하고 있었다.
생계를 위해 거리로 나선 고령자들에게 기초연금은 마지막 의지처지만, 정부는 최근 수급연령을 늦추고 부부감액제 유지 방안을 검토하며 개편 논의를 진행 중이다.
빈곤율이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에서, 노인의 삶은 점점 더 불안정해지고 있다.
정부가 재정 부담을 이유로 기초연금 수급연령을 상향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노년층의 경제적 불안정성이 심각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호서대 사회복지학부 김성욱 부교수는 국민노후보장패널 데이터를 바탕으로 수급연령을 1년에서 최대 4년 늦추는 시나리오를 적용해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다.
그 결과, 수급연령이 단 1년만 늦춰져도 66세 노인 가구의 경제 불안정성은 16.9% 급증했다. 수급이 4년 미뤄지면 불안정성은 무려 64.3%까지 치솟았다.
특히 타격은 저소득층에 집중되어, 소득 하위 20%에 해당하는 노인 가구는 수급연령이 4년 늦춰질 경우 경제 불안정성이 46% 가까이 늘었다.
그러나 상위 20% 노인 가구는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아, 기초연금 의존도가 높은 계층일수록 제도의 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드러났다.
김 교수는 이 같은 정책이 고령층을 저임금·저숙련 노동시장으로 몰아넣는 구조적 요인이 될 수 있다며, 자발적인 경제활동이 아니라 ‘불가피한 생계 노동’으로 내몰릴 가능성을 경고했다.
정부의 공적 연금이 줄어들어도 가족이 이를 메워줄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제시되기도 했으나, 연구 결과는 달랐다.
자녀 등의 사적 이전소득이 노인의 취업률을 낮추는 경향은 있었지만, 연금이 삭감됐을 때 가족 지원이 늘어나는 보완 효과는 거의 관찰되지 않았다.
기초연금이 줄면서 평균적으로 1.3~1.5배 더 많은 금액이 빠져나갔는데, 이 차이를 가족 부양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김 교수는 “기초연금 수급연령을 늦추는 일은 단순한 재정 조정이 아니라 노인의 삶 전체를 흔드는 조치”라며, 제도 개편 시 노인층의 생계 불안과 계층 간 불평등 심화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초연금도 부족한 상황에서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노인들은 공공형 일자리로 향하지만 위험한 현장도 많다.
지난 5일, 전북 장수군의 한 농수로 정비 현장에서 80대 남성이 추락해 사망했다. 함께 일했던 노인들은 “비 오기 전에 나뭇가지나 치우자고 나섰다가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또한 며칠 전 고창에서도 80대 노인이 잡초 제거 중 탱크로리에 깔려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공공형 노인일자리 참여자 중 연평균 20명 이상이 사망하고, 매년 3천 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이들이 받는 보수는 하루 3시간 기준 월 최대 10일 근무 시 약 29만 원으로 적은 편이지만, 이러한 일자리라도 포기하기는 어렵다.
2024년 기준 기초연금 평균 수령액은 약 80만 원으로, 1인 최저 생계비 134만 원에 훨씬 못 미치기 때문이다.
노인 일자리에 5년째 참여 중인 70대 이 모 씨는 “그래도 이 돈으로 손주 용돈도 주고 생활비도 보탠다”며 “사고 소식을 들을 때마다 걱정은 되지만, 이 일이라도 없으면 더 막막하다”고 털어놨다.
이재명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세운 기초연금 ‘부부 감액’ 단계적 축소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국민연금연구원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부부가구에 적용 중인 20% 감액 제도는 소비지출 현실에 비춰볼 때 크게 과도하지 않다고 본다.
실제로 단독가구 대비 부부가구의 평균 소비지출은 약 1.22배로, 정부가 가정한 1.6배보다 훨씬 낮았다.
하지만 이 역시 평균의 함정에 갇혀 있다. 소득·자산 하위 20% 부부의 경우 소비지출이 단독가구의 1.74배에 달했고, 보건의료비는 1.84배에 이르렀다.
김만수 국민연금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기초연금이 실질적인 공공부조 역할을 하려면, 저소득·저자산 노인을 위한 별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부는 연금개편 논의 과정에서 재정 건전성을 주요 근거로 들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고령자들이 안전장비 없이 일터에 나가 생계를 이어가다 목숨을 잃고 있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효율성과 수치만이 아닌, 현장에서 살아가는 노인들의 삶과 존엄에 대한 고려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