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동안 대소변 받아줘"…사고로 죽을 뻔했는데, 아내 덕에 살았다는 男배우
||2025.07.04
||2025.07.04
오늘은 명배우 이덕화 씨의 사랑 이야기를 소개해 드릴게요.
1977년 4월 7일, 그날은 배우 이덕화 씨 인생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당시 최고의 청춘스타로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던 중 서울 한남동 타워호텔 인근 고가차도에서 시내버스와 충돌하는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합니다.
수십 미터를 끌려가며 온몸이 너덜너덜해질 정도의 대형 사고.
그 순간부터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사고 직후 이덕화 씨는 2주간 혼수상태에 빠졌고, 이후에도 무려 10개월을 중환자실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아침에 비명에 깨고, 저녁에 비명에 잠든다.”
그가 나중에 직접 밝힌 말처럼, 그 시간은 참혹한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총 53번의 대수술, 4,000바늘을 넘는 꿰맴.
사라진 엉덩이 살을 대신해 피부 이식을 했습니다.
결국 지체장애 3급 판정을 받고 그의 몸도 마음도, 산산조각이 나버린 시간이었습니다.
더 마음 아픈 건, 이 사고가 아버지의 죽음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이덕화의 아버지 원로배우 이예춘 씨는 아들의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었고, 결국 병원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 채 세상을 떠났습니
그 마지막 순간,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들의 손을 잡고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이덕화 씨는 이후 방송에서 여러 번 이야기했습니다.
“아버지는 끝까지 나를 걱정하셨다. 그 죄책감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절망의 시간을 버틸 수 있게 만든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지금의 아내이자 한국무용가인 김보옥 씨입니다.
당시 두 사람은 연인이었지만, 김보옥 씨는 병상에 누운 이덕화를 하루도 빠짐없이 간호했습니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대소변까지 받아내며 정성을 다해 그를 지켜냈습니다.
이덕화 씨는 “내가 그녀에게 ‘떠나라’고 말했지만, 끝까지 곁을 지켜줬다”고 회상합니다.
그 진심에 감동한 그는 결국 그녀와 결혼을 결심했고,
“내 인생은 이제 내 인생이 아니라, 아내가 만든 인생”이라며 모든 재산을 아내 명의로 바꿨다고 밝혔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아내가 임신 중에도 이덕화 씨를 간호했다는 점입니다.
병원 간이침대에서 눈을 뜬 어느 날, 온몸의 욱신거림을 느낀 그는 문득 이렇게 깨달았다고 합니다.
“아, 아내가 날 간호할 때 이런 고통을 3년이나 겪었겠구나…”
그 순간 이덕화 씨는 울컥하는 마음을 꾹 눌렀다고 고백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그를 다시 살아나게 만든 기적 같은 힘,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바로 아내의 사랑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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