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되지 않은 땅굴만 수십 곳, 북한이 서울까지 땅 팔려고 했던 땅굴 내부

오버히트|혹우어항속|2025.07.15

첫 발견의 충격 – 제1·2·3·4땅굴의 실체

북한이 남침용 땅굴 건설을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로, 이후 1974년부터 1990년 사이에 총 4개의 주요 침투용 땅굴이 발견됐다.

  • 제1땅굴(1974년 연천): 서울까지 65km, 시속 연대 병력(수천 명) 이동 가능
  • 제2땅굴(1975년 철원): 너비 2m, 깊이 50~160m, 시추공 45개로 확인
  • 제3땅굴(1978년 파주): DMZ 너머 400m, 인접 측량 지하 73m, 시속 30,000명 가능
  • 제4땅굴(1990년 양구): 동부전선 첫 발견, 길이 2.1km에 달함

이들은 모두 침투 후 서울을 목표로 병력과 중화기 진입용으로 설계된 구조였다.

제5땅굴 가능성 – 예병수 예비역 대령의 경고

“이미 다섯 개에서 일곱 개의 땅굴이 더 있을 것”이라는 예병수 예비역 대령의 언급은 지속되는 침투 위협을 부각시킨다. 실제로 탈북자 및 내부 증언에 따르면, DMZ 일대에서 지하 공사 흔적이 수천 회 포착되었으며 발견되지 않은 땅굴이 상당히 존재할 수 있다.

탐사와 접전 – 1974년 교전 이후 발굴 돌입

제1땅굴 발견 시, 국군은 1시간에 300발 교전, 전사 8명 발생하여 본격적인 발굴 체제로 전환됐다.
제3땅굴은 탈북자 김부성의 측량 증언을 따라 탐사됐고, DMZ 내 시추 단계에서 김 씨가 지뢰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엄청난 규모와 접근성 – 병력 이동 가능 터널

발견된 제1~4땅굴 중, 특히 제3땅굴은 너비 약 2m, 높이 약 2m, 깊이 73m로, 트럭 통행까지 가능한 규모였다.
이는 실제 병력은 물론 차량과 중화기까지 실어 나를 수 있는 수준으로, 전면전용 침투 통로로 설계된 구조였다.

시추작업과 기술적 탐지 노력

1998년과 2000년대 이후, 국방부와 유엔사는 ‘65사업’ 등 명칭으로 서·동부전선 포함 여러 지역에서 총 7곳을 시추 조사했지만, 제5땅굴은 아직 뚜렷히 발견되지 않았다.

지질·기술 탐지의 난제

DMZ 지역은 100~500m 깊이 화강암층이 존재하며, 북한 땅굴은 폭발식 굴착방식을 사용해 지표 흔적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전문 기술이 집결된 시추와 지진파 탐지 등을 활용했지만, 여전히 드러나지 않는 심층 땅굴에 대한 탐사 난이도는 매우 높은 상태.

DMZ 주변 지뢰·위험 요소 여전

탐사 지역 인근은 여전히 지뢰밭과 경고선 등 위험 구역이다.
김부성 씨의 사례처럼 연구자·거주자·군인 모두 지뢰 및 구조 미확인 요소로 인해 피해 발생 가능성이 있으며, 진입조차 어려운 환경이다.

대응 전략 – 기술·인력·예산 삼박자 필요

현재 한국군은

  • 고정형 지진파/음파 탐지 시스템 도입
  • 정밀 시추 및 시굴
  • 지하 레이더 장비 도입
    을 병행한 맞춤형 대응 체계를 구축 중이다.
    탈북자 첩보·과학기술·현장 조사 병행 방식이 핵심으로, 예 병 수 예비역 대령도 여전히 미발견 땅굴 탐사 지속을 강조하고 있다.

땅굴 위협은 여전하며 지속 대응 필요

북한의 남침용 땅굴 전략은 단순 과거의 유물에 그치지 않는다.

  • 이미 4개의 대형 땅굴이 존재하며
  • 최소 13개 이상의 제57땅굴 가능성이 계속해서 제기된다
  • 탐사 난이도는 깊은 지질과 지뢰 등 물리적·기술적 요인으로 높다
  • 국가 안보 차원에서 땅굴 대응은 지속적 예산·기술·인력 투입이 필요한 과제다.

북한 땅굴은 여전히 DMZ 주변 지역의 불가시적 위협요소이며,
대한민국은 향후에도 지하 침투로에 대한 경계와 전략적 대응을 멈춰서 안 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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