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 모델→단역→신인여우상...최초 ‘천만 女배우’ 타이틀 얻은 24살 女스타의 꿈
||2025.08.12
||2025.08.12
2000년대 초, 스크린을 가득 채우던 도시적이고도 따뜻한 눈빛.
배우 이은주입니다.
군산에서 태어나 피아노와 무용을 배운 소녀.
이은주는 1996년 스마트 학생복 모델 은상으로 처음 대중 앞에 섰고요.
예능과 드라마 단역을 거쳐 연기로 방향을 틀게 되었죠.
드라마 '스타트'로 연기를 시작해 스크린에는 영화 '송어'로 데뷔.
이은주는 '오! 수정’으로 신인여우상을 안으며 가능성을 증명했죠.
‘번지점프를 하다’로는 확실히 이름을 새겼고요.
그녀의 성장 속도는 빨랐지만 태도는 차분했습니다.
촬영장에선 기력이 다할 만큼 몰입했고.
현장 밖에선 책과 음악을 사랑하던 이은주였죠.
같은 교회를 다니던 기자는 그를 “맑은 품성의 젊은이”로 기억합니다.
봉사와 영화 제작을 꿈꾸고.
하루키와 재즈 얘기라면 밤을 새우던 사람이라고요.
하지만 시간은 한쪽으로만 흐르지 않았습니다.
이은주는 드라마 ‘불새’를 촬영하던 무렵부터 흔들리기 시작했고.
‘주홍글씨’에선 우울증과 불면증이 심해졌습니다.
과한 스케줄은 생활의 리듬을 무너뜨렸고.
잠 못 이루는 밤은 우울로 번졌습니다.
그 마음을 “지난 1년 너무 고통스러웠다”는 한마디로 흘려보내기도 했죠.
2005년 2월 22일.
우리는 그녀를 너무 일찍 떠나보냈습니다.
향년 스물네 살.
남겨진 기록엔 현실의 고민도 비칩니다.
이은주의 유서에는 “돈 때문에 참 힘든 세상이야”라는 문장이 있었고.
"내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 힘듦을 알겠어"라는 말이 모두를 눈물짓게 했죠.
우울은 의지박약이 아니라 병이라는 말.
WHO가 경고한 시대의 질환이라는 설명.
그 문장을, 우리는 그녀의 기사 속에서 뒤늦게 다시 읽습니다.
그러니 섣부른 추측보다 먼저 해야 할 일.
주변인에게 더욱 관심을 가지고 손을 내미는 것.
잠 못 든다는 신호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일입니다.
우리가 기억할 이름은 비극의 소문이 아니라.
매 순간을 다해 연기한 한 사람의 태도.
그리고 서로의 밤을 묻는 질문입니다.
영화관 불이 켜져도 여운이 남는 배우.
이은주.
당신이 남긴 빛은, 오늘도 조용히 우리를 붙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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