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파인’ 류승룡 "임수정이 연기한 양정숙 역할 탐났죠"
||2025.08.18
||2025.08.18
"바늘 도둑이 그야말로 소 도둑이 된 거죠. 관석이 처음 도자기를 꺼내는 작업에 제안받은 금액이 40만원이었어요. 그러다가 2000만원, 5000만원으로 불어나요. 욕망이 복리효과로 불어난 거죠. 만족에 제동장치가 있다면 좋을 텐데, 그게 안 되잖아요? 어느 순간에서 멈췄다면 모두가 행복하지 않았을까 싶었죠."
지난 13일 총 11부작으로 막을 내린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파인: 촌뜨기들'(극본 강윤성, 안승환·연출 강윤성)은 1977년을 배경으로 바닷속에 묻힌 보물선을 차지하기 위해 몰려든 생계형 촌뜨기들의 속고 속이는 이야기를 그렸다. 고려 시대 도자기 등을 싣고 신안 앞바다를 오가다가 침몰한 원나라 무역선을 발견한 1976년 목포 신안선 발굴 과정에서 모티프를 얻은 윤태호 작가의 웹툰 '파인'을 원작으로 했다.
류승룡은 돈 되는 일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성실한 악당 오관석을 연기했다. 다채로운 캐릭터의 향연 속에 극의 중심을 단단하게 지탱한 그는 캐릭터의 성실함과 집요함을 디테일하게 표현하는가 하면 본능적으로 발현되는 욕망으로 인한 잔혹한 모습을 지닌 오관석의 다양한 면을 소화했다. 요령과 잔머리에 능하고, 거침없는 리더십으로 선과 악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다 결국 솟구치는 탐욕과 욕망에 잠식당한 완전한 악인의 면모를 보여줬다.
18일 맥스무비와 만난 류승룡은 "돈이면 행복도 사고 신분도 상승할 수 있다는 마음이 변질되고 왜곡됐다. 극 중 조카인 희동(양세종)은 사람을 해하지 않는다는 선을 절대 넘지 않지만, 관석은 고민 끝에 그 경계를 넘게 된다"고 말했다. "관석은 돈을 위해 움직이는 인물이었죠. 자신에게 유리한 모든 것의 기준이 돈이 된 것이죠. 관석을 움직이는 절대적인 기준은 돈과 이익이라는 생각하고 연기했습니다."
● "오관석은 그 시대 우리 아버님의 모습"
오관석은 가부장적인 인물이다. 공부를 못하는 자식들에게 서슬 퍼런 말을 쉽게 내뱉고, 아내에게도 권위적으로 행동한다. 하지만 가족들이 자신이 번 돈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며 그 누구보다 흐뭇해하는 '우리네 아버지'이기도 하다.
류승룡은 "그 시대, 배우지 못한 우리 아버님들이 있지 않나. 며칠씩 안 보이다가 돈 주고 또 사라지고 그러다가 갑자기 밥상도 엎는다"며 "어디에 말할 수 없지만 가장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지지 않았나 싶다. 지금으로 봤을 때 분노조절장애나 피해 망상, 우울증 같은 걸 앓고 있지 않았을까 한다. 그런 모습을 관석에게 투영했다"고 설명했다.
보물선에 담긴 도자기를 서로 차지하려는 촌뜨기들의 속고 속이는 심리전은 '파인: 촌뜨기들'의 가장 큰 매력이다. 각자의 목표와 방식이 얽히며 사건은 점점 커지고,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긴장감은 극대화됐다. 류승룡을 비롯해 양세종·임수정·김의성·김성오·홍기준·우현·김종수·이동휘·장광·정윤호·이상진·김진욱 등 여러 배우들이 욕망을 품은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려내며 치열한 보물 쟁탈전을 펼쳤다.
부자는 되고 싶은데 머리가 따라주지 않고, 마음은 급한데 전략은 없이 그야말로 아귀다툼을 벌이는 촌뜨기들의 모습은 분명 악인의 모습이지만 엉성하고 순박하다. "다들 악역이잖아요. 탐욕과 욕심으로 가득 찬 악의 모습으로 벌을 받았는데 마지막 회 반응을 보니까 '죽지 마라' '살려내라'며 시청자들의 원성이 자자하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캐릭터들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생각이 보람이 됐어요."
● 캐릭터들의 향연 "양정숙 연기해 보고 싶었죠"
류승룡은 "마치 무협지 같았다"고 촬영 현장을 돌이켰다. "각 배우들이 하나씩 필살기가 있었다. 남을 해치지 않으면서 자신의 몫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해내는 현장이었다"고 밝혔다.
"'파인: 촌뜨기들'이라는 작품이 함께 보물을 찾는 과정에서 욕망하고 믿고 신뢰하지만 결국 배신하는 이야기잖아요. 위험한 관계들이고, 위에서 밀어주지 않으면 아래서 죽기도 하죠. 이런 이야기이기 때문에 연기를 하면서도 배우들이 서로를 밀거나 당겨주고 협업해야 했죠. 그래서 그런지 현장이 굉장히 돈독했어요. 지금까지도 굉장히 끈끈하죠."
다양한 캐릭터 중에서 류승룡은 '양정숙'에 욕심을 냈다. 임수정이 연기한 양정숙은 천회장(장광)의 아내로, 회사 경리로 일하다가 회장의 눈에 들어 후처가 된 인물이다. 천 회장의 내조에 전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내를 감춘 야망 넘치는 모습으로 판을 주도하며 인물들을 쥐락펴락했다.
류승룡은 "배우로서 양정숙은 모든 걸 다 보여줄 수 있는 인물처럼 보였다"면서 "다만 임수정 배우가 연기하는 걸 보고 저렇게 할 자신이 안 생겼다. 찬사를 보내고 싶었다. 13년 전에도 훌륭한 배우였지만 그동안의 시간들을 잘 보낸 것 같더라. 원숙하면서도 다양한 스펙트럼을 표출할 수 있는 배우가 됐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2012년 개봉한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 이후 13년 만에 이 작품으로 재회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에요. 이런 현장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그래서 이걸 누리고 느끼자고 생각했죠. 배우들한테 많이 얘기했던 것 같아요. 촬영 현장은 태양 때문에 늘 뜨겁고 뱃멀미까지 해서 힘들었는데 행복했어요. 우애가 있었어요. 맛집이 많았어요.(웃음) 촬영이 끝나는 게 아쉬울 정도였어요. 경험이 적은 친구들한테 '이런 현장은 드물다'고 단단히 일러두기도 했죠."
● '무빙'처럼.."'파인: 촌뜨기들'도 시즌2 노려"
극 말미에 최후를 맞은 것처럼 보였던 오관석이 살아 있는 모습으로 결말을 맺었다. 류승룡은 "생명력이 긴 오관석이 트럭과 함께 절벽으로 떨어질 때 옆으로 통통 굴렀다고 가정했다"며 "악인인 만큼 파국이 마땅한 인물이다. 만약 시즌2가 이어진다면 처참한 결말이 맞지 않을까 했다. 그렇게 이해하고 찍었다"고 강조했다.
류승룡 역시 시즌2를 희망했다. "내년에 '무빙' 시즌2를 찍을 예정인데 '파인'도 '무빙'처럼 시즌2를 찍어서 '류승룡이 디즈니와 하면 시즌2를 찍는 구나'라는 얘기를 들었으면 좋겠다"고 웃었다. 이어 "시즌2까지 기획된 작품이 아닌데 반응이 좋고, 작품이 좋아서 다음 시즌을 찍는 건 배우로서도 창작자에게도 영광"이라고 짚었다.
"촬영하면서 배우들과 가끔씩 시즌2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러다가 경주나 왕릉 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죠. 촌뜨기들이 일본으로 넘어가는 상황까지 가정했죠. 하하. 그러면 많은 분들이 우리를 더 응원하지 않을까요? 그냥 저희끼리 대화를 나눴어요."
디즈니+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무빙' 시즌2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지난해 모회사 월트디즈니컴퍼니는 시즌2 제작을 공식화하며 원작자이자 대본을 쓴 강풀 작가와 함께한다고 밝힌 바 있다. 류승룡은 "김성훈 감독님이 연출하는 것 말고는 잘 모른다. 시나리오도 받지 못했다. 뭘 그렇게 비밀에 부치는지 궁금해 죽겠다"고 웃어 보였다.
류승룡은 오는 10월에 JTBC 새 토일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공개를 앞두고 있다.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한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한 중년 남성이 긴 여정 끝에 마침내 대기업 부장이 아닌 진정한 본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내용이다. 류승룡은 "어제 밤 11시까지 촬영하고 왔다"며 "제 나이나 주변과 관계된 이야기다. 성별에 관계없이 누군가에게는 앞으로 벌어진 일이고 다음 챕터에 대한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쉬지 않고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서 활약하고 있는 류승룡이지만 "나이가 들면서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라는 조바심도 생긴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관객이나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워낙 높아졌지만 공들인 작품에는 따뜻하게 반응해 주는 거 같다"고 했다.
"게으르거나 얕은 수로 다가가면 안 된다는 걸 느껴요. 관객의 평가 역시 겸허하게 받아들이려고 하죠. 저는 과거 따갑게 회초리를 맞은 적도 있거든요. 물론 '파인' 같은 작품으로 연고도 발라주시고 응원을 받기도 했죠. 시간이 갈수록 진실되게 만드는 것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