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파인’ 임수정 "양정숙, 배우 인생에서 '어떤 계기'가 된 느낌"
||2025.08.19
||2025.08.19
배우 임수정이 '욕망'의 얼굴을 드러냈다. 돈과 권력, 야망에 도취한 인물로 낯설고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지난 13일 종영한 강윤성 감독의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파인: 촌뜨기들'(극본 강윤성·안승환)을 통해서다. 윤태호 작가의 동명 웹툰이 원작인 이 작품은 1977년을 배경으로 목포 인근 신안 앞바다에서 고려 시대 때 침몰한 원나라 배에 실린 도자기들을 건지려는 사람들이 모여 속고 속이는 이야기를 그렸다.
근면·성실한 악당들 사이에서 임수정은 보물 찾기의 자금을 대는 기업 흥백산업 천 회장(장광)의 후처이자 경리 출신으로 셈에 밝은 양정숙을 연기했다. 극의 긴장감을 이끌어가는 핵심 인물 중 유일한 여성인 양정숙은 목포에서 몰래 건져올리는 도자기가 돈이 될 것 같자 그 판을 쥐락펴락하며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고상하고 기품 있는 사모님으로 우아한 스타일링과 품격 있는 겉모습과 달리 천 회장이 자리에 누운 틈을 타 재산을 탐닉하거나 궁지에 몰리자 거친 언행과 분노를 폭발하는 임수정은 야망과 비굴함이 공존하는 인물을 매력적으로 표현했다.
호평을 받고 있는 임수정은 19일 맥스무비와 만나 "20대 때부터 인터뷰를 통해 '악역이나 빌런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고 이야기를 해왔다"면서 "저도 몰랐던 무의식과 잠재의식이 자연스럽게 양정숙이라는 용기 있는 선택을 이끈 것이 아닐까 한다"며 미소 지었다. 이어 "그간 보여줬던 캐릭터들과 많이 달랐기 때문에 대중도 놀라워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제안을 받았을 때 윤태호 작가님의 원작과 강윤성 감독님이 각색한 대본을 봤어요. 둘 다 너무 재밌고 완성도가 높더라고요. 원작의 양정숙은 정말 무시무시한 사람이더라고요. 강 감독님은 드라마에서 양정숙이 거친 남자들에게도 절대 밀리지 않는, 논리적인 언변의 카리스마를 많이 보여주고 싶다고 하셨어요. 감독님이 파악하고 해석한 양정숙의 핵심에 동의했고 이 작품에서 잘 표현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 양정숙은? "돈을 좋아하는 인물"
천 회장의 내조에 전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양정숙은 자신의 목마름에 충실한 여성이다. 임수정 또한 "감정을 솔직하게 내뱉는 연기가 재밌었다. 상대를 위한 대사는 하나도 없이 오직 자기밖에 모르는 인물이다. 그간 연기했던 캐릭터가 주로 상대방을 배려하거나 포용하는 역할이었는데 이렇게까지 자신을 중심에 두고 솔직하게 얘기하는 캐릭터를 만나니까 신나고 재밌었다"고 돌이켰다.
"제가 연기하는 인물에 몰입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분들도 잘 받아들여준 것 같아요. 처음에는 저의 이미지를 생각해 '잘 어울릴까?' 의문을 갖고 보다가 차츰 '어울리네'라는 느낌을 받으면서 재미도 있었을 것 같아요. 양정숙을 저에게 맡겨주고 이끌어준 강윤성 감독님에게 감사하죠."
물론 처음부터 완벽하게 양정숙에게 몰입했던 것 아니었다. "초반 촬영 중에 감독님이 '눈이 너무 착하다'고 말하더라. 대사할 때 어미를 수정하거나 분장팀에게 '눈매를 매섭게 해달라'고 요청하면서 외적으로 포스나 카리스마가 나올 수 있게 조절했다"던 임수정은 "촬영 1~2회차가 넘어가니까 양정숙에 몰입이 됐고 '사모의 포스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웃었다.
임수정은 양정숙을 "돈을 너무 좋아하는 인물"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그냥 그게 좋은 거다. 여러 전사를 생각하기보다 그렇게 태어났고 본성적으로 권력과 돈에 끌린다고 생각했다. 그게 더 설득력이 있을 것 같았다"고 짚었다.
"돈을 좋아하고, 권력을 쥐어 위로 올라가려고 하죠. 자신의 전술과 전략이 먹힐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말을 보면 알죠. 그건 착각이잖아요. 정숙의 빈틈을 누군가는 짠하게 느끼지 않았을까요? 그런 인간적인 면모 때문에 공감을 받고 매력적으로 보였던 것 같기도 해요."
'파인: 촌뜨기들' 속 등장인물은 대부분 '욕망'이 앞서 악행을 저지르는 것도 서슴없다. 하지만 그 과정서 엉성하고 어리석고 때로는 순박한 모습을 보여준다. 임수정 또한 "다 나쁜 사람들이지만 어딘가 짠하고 안쓰러운 구석들이 있기 때문에 촌뜨기들이지 않나 싶다"며 "권력의 가장 위에 있는 천 회장은 자신이 가진 걸 그대로 유지하지만, 소시민적인 인물들은 욕망하다가 목숨을 잃기도 한다. 그 시대를 살아간 이들에 대해 강윤성 감독님의 연민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 양정숙으로 깨달은 '연기의 재미'
드라마는 양정숙의 결말을 완전하게 보여주지 않았다. 죽음이 암시됐으나 승부사인 그녀가 그 상황을 분명히 빠져나왔을 가능성도 있다. 임수정은 "열린 결말이고 보시는 분들이 상상하기 나름인데 완전히 제작진의 의견에 따랐다"고 밝혔다.
"정숙의 생존 여부는 잘 모르겠어요. 저는 그저 엔딩 장면까지 그 입장에서 최선을 다해서 연기했죠. 뒤는 별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그저 그 순간에만 집중했죠. 시즌2 이야기도 나오는데, 정숙과 상관없이 다음 이야기가 나오면 기쁠 것 같아요. 이번에는 담을 수 없었던 이야기를 이어갔으면 하죠."
임수정은 양정숙을 통해 "확장된 연기의 폭을 보여드릴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면서 이 작품을 계기로 "더 다양한 작품과 역할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배우의 인생에서 어떤 계기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강조했다.
"양정숙을 연기하면서 재밌었어요. 지금은 다른 작품(드라마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법')을 촬영 중인데 또 재밌어요. 연기를 알 것 같다거나 쉬워진 게 아니라 그냥 재밌더라고요. 그러면서 '배우 일을 해온 게 잘 한 거구나'라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러면서 제가 재밌게 하면 그 캐릭터가 예쁘거나 부족하거나 혹은 나쁘더라도 좋게 봐준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됐어요."
임수정은 전작인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에서도 1970년대 영화 촬영 현장에서 우여곡절을 겪는 배우 역할을 능청스럽게 소화한 바 있다. "'거미집'도 지금까지와 다른 선택이었다"는 그는 "그 이후에 양정숙을 하게 됐는데 느리지만 독창적이고 개성 있는 여성 캐릭터로 확장되어가는 것 같아 재밌다"고 이야기했다.
"당연히 지금까지 해왔던 역할들도 열려 있어요. 그런데 새로운 역할을 하면서 깨닫는 게 많더라고요. 저도 몰랐던 목소리나 표정, 리듬감이 발견되니까 시도해 보고 싶더라고요. 물론, 로맨스나 멜로도 놓칠 수는 없어요. 하하! 최근 유튜브 댓글에서 양정숙이 우는 영상에 어떤 분이 '소지섭이 데리러 올 거야'라고 적었더라고요. 너무 귀여웠고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여운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 분들 덕분에 고마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