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야기 보물창고’ 윤태호 작가 "'파인' 시즌2 소재 충분해요"
||2025.08.19
||2025.08.19
1977년, 신안 앞바다에 가라앉은 보물선을 두고 탐욕에 눈이 먼 이들이 서로를 속고 속이며 벌이는 도굴 작전을 그린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파인: 촌뜨기들'은 윤태호 작가의 웹툰 '파인'을 원작으로 한다. 윤 작가는 1976년 목포 신안 증도 앞바다에서 어부의 그물에 걸려 올라온 도자기에서 시작된 신안선 발굴 과정을 웹툰의 모티프로 삼았다. 당시 고려 시대 도자기 등을 싣고 신안 앞바다를 오가다가 침몰한 원나라 무역선의 발견은 한국 고고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윤 작가에게 '파인'를 시작하는 결정적 영감이 됐다.
지금처럼 웹툰의 영상화가 활발하지 않았을 때부터 tvN '미생'을 비롯해 영화 '이끼'와 '내부자들' 등 윤태호 작가의 웹툰은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져 큰 호응을 얻어왔다. '파인: 촌뜨기들' 역시 윤태호표 웹툰의 탄탄한 서사와 리얼리티가 강력한 흡인력을 발휘하며 '웹툰과 드라마의 성공적인 만남'이라는 평가를 얻고 있다. 드라마는 보물을 건지기 위해 목포로 모인 사기꾼 오관석(류승룡)과 그 조카 오희동(양세종)을 중심으로 오합지졸 같은 도굴꾼들의 이야기다.
지난 18일 맥스무비와 만난 윤 작가는 웹툰 '파인'은 연재 때부터 영상화를 전제로 쓴 작품이라고 밝혔다. "연재할 때부터 영상화를 계획한 작품이지만 '실제로 구현이 가능할까?' 싶었던 작품"이라고 했다.
"배우들이 실제로 바닷속에 들어가야 하잖아요. '만화적인 허용을 어디까지 해야 할까' 고민했죠. 또 물속에서 보물선이나 그릇 같은 것들이 보여야 하는데 실제 서해가 뻘밭이라서 고민이 많았죠. 그래서 신안군에 직접 가서 어부들에게 물어봤어요. 들어 보니까 물살이 빠른데 그 결이 바뀌면서 순간적으로 맑아진다고 하더라고요. 그 대화 덕분에 오희동이 보물선을 마주하는 장면을 그릴 수 있었죠."
윤태호 작가는 "사람마다 관심이 풍부한 시기가 있는데 저에게는 1970~80년대가 그런 시대"라고 했다. 그 때문에 "신안선 발굴 작업은 늘 제 아이디어 서랍 속에 있었다.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꺼내서 반응을 보고, 괜찮으면 파고들었다"고 돌이켰다.
윤 작가의 호기심과 관심은 '테마'가 잡히고 취재를 통해 구체화됐다. "70년대 하면 근면 성실이잖아요.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악인들조차 성실했을 것 같았죠. 그런 무법자들이 배를 타고 나갈 때만큼은 서로를 해치지 않아야 하는 준법정신이 필요하다는 지점에서 흥미를 느꼈어요. '무법자들의 준법정신' '서로를 신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기꾼들'이라는 아이러니가 생기는 거죠. 그래서 작품 초반에 이들이 범죄를 얼마나 숨 쉬듯이, 죄책감 없이 저지르는지를 보여줬죠. 물론 그릇이 빨리 나오지 않아서 불만이 있던 시청자들의 의견도 있었지만요."
철저한 취재는 윤 작가만의 특징이자 강점이기도 하다. "당시 신안선 발굴과 관련한 뉴스는 거의 다 찾아보고 실제 목포에 가서 발굴한 유물들이 전시된 공간을 찾기도 했다"며 "신안군 섬들을 직접 방문하고 드론으로 사방을 찍었다. 헌책방에서 골동품과 관련한 에피소드들이 적힌, 비문으로 가득하지만 생생한 현장이 담긴 책들을 읽기도 했다"고 말했다.
● 임수정의 양정숙이 "100% 맞다"
윤태호 작가의 웹툰 속 인물들을 개성이 강하고 생동감이 넘친다. 그 비결로 플롯(사건 배열)보다 캐릭터를 실제화하기 위한 노력을 먼저 기울인다고 강조했다. 윤 작가에 따르면 극 중 중요한 인물들의 출생 연도와 가족사 같은 가상의 설정들을 만들고, 연령대별 연보를 만들어 실제 역사적 사건과 겹치며 그가 어떤 경험을 했을지 기록한다. 그렇게 캐릭터를 만드는 데만 "반년이 넘게 걸린다"고 했다.
그 과정서 캐릭터의 '경계면'을 중시한다. "오관석을 상투를 쥐어야 하는 오야(두목)로 세우면 그 카리스마가 강점이지 동시에 약점이 돼요. 그는 사모님(양정숙)이 처참한 상황에서도 돈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인간적인 고뇌와 결핍이 드러나죠. 저는 캐릭터가 얼마나 일을 잘하는가 보다 '왜 일을 못 하게 되는가'의 사연이 중요하다고 봐요."
윤 작가는 "그렇게 경계가 뚜렷한 인물이 12명이 나오면, 12가지 색이 나오고 그것이 작품을 컬러풀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원작자인 그를 가장 놀란 캐스팅은 임수정이었다. 양정숙 역에 임수정이 캐스팅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분이 왜요?"라고 반문했을 정도로 "양정숙은 멸망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는 인물"이라고 짚었다.
"한 번은 촬영장에 임수정 배우가 연기하는 걸 본 적이 있어요. 오관석(류승룡)한테 화내는 장면인데 곱게 말하는 걸 보고 '내가 생각한 톤이 아닌데'라고 느꼈죠. 정숙은 교활하고 이재에 밝은 여성이라 카랑카랑한 톤을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시리즈를 보면서 반성했어요. 임수정 배우가 해석한 양정숙이 더 맞더라고요. 자신이 몸담았던 회사의 회장 사모가 됐는데 천박한 모습을 왜 유지하겠어요. 사모님을 연기하겠다 싶더라고요. 임수정의 양정숙이 100% 맞았죠."
● 윤태호 작가가 원작자로서 밝힌 '소신'
그는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다양한 웹툰을 가진 작가로서 원작과 영상화의 관계에 대한 소신도 갖고 있다. 과거 윤 작가가 "'미생' 스태프 시사회에 간 적이 있는데 '마음에 안 들면 어떡하려고 오셨냐'고 하더라. 그런데 저는 애초에 그런 마음이 없다. 영화나 드라마가 원작의 재방송이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저도 그저 한명의 시청자일 뿐이에요. 영상화하는 분들이 원작자인 저보다 원작을 반복해서 봤을 거예요. 그래서 제가 미쳐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죠. 강윤성 감독님은 '파인'을 1년 넘게 각색했어요. 원작이 좋았다면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했을까 싶었죠.(웃음) 많이 주무르고 재설정하고 고민한 결과물이기 때문에 저도 선후가 달라지는 부분을 보면서 이렇게 매력적이게 엮일 수도 있구나 느꼈죠."
'파인: 촌뜨기들'은 열린 결말로 막을 내렸다. 죽은 줄 알았던 오관석은 살아 있었고, 양정숙의 생사 여부도 명확하게 그려지지 않았다. 류승룡은 촬영하면서 배우들과 '파인: 촌뜨기들' 시즌2에 대한 여러 아이디어를 공유하기도 했다. 윤태호 작가 또한 다음 시즌에 대해 "준비는 돼 있다"고 밝혔다.
"다음 시즌을 이어간다면 명분과 소재가 달라야 하겠죠. 두 개의 시즌까지는 준비가 돼 있습니다. 물론 우리끼리 즐거운 이야기를 하는 거지만 강윤성 감독님에게 원작격의 이야기를 써드릴 소재는 있다고 이미 말씀드렸어요. 두 시즌의 소재는 충분하죠. 무슨 소재냐고요? 김빠지니까 말씀드릴 수 없어요. 하하!"
윤태호 작가는 현재 드라마도 집필하고 있다. '이끼'의 시리즈물을 준비 중으로 "트리트먼트(시나리오 초안의 전 단계) 작업이 너무 길어졌다. 100페이지가 넘었다"고 웃어 보였다. '이끼'는 윤 작가가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연재한 웹툰으로, 폐쇄적인 농촌 마을을 배경으로 한 스릴러물로 2010년 한차례 영화화된 적 있다. "집필을 엄두도 못 내다가 강풀 작가가 ('무빙' '조명가게' 등으로)스타트를 끊어었잖아요. '그렇다면 나도 한번'이라는 생각으로 각본을 쓰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