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 "웃겨도 돼요?" 박찬욱 감독 "웃길수록 좋지!"
||2025.08.20
||2025.08.20
배우 이병헌은 영화 '어쩔수가없다' 시나리오를 읽고 박찬욱 감독에게 물었다. "감독님, 저 웃겨도 돼요?" 그러자 감독은 답했다. "웃길수록 좋지."
9월 말 개봉하는 '어쩔수가없다'(제작 모호필름)은 '웃긴데 슬프고 슬픈데 웃긴' 이야기다. 지난 19일 영화를 처음 소개하는 제작보고회 자리에서 이병헌부터 손예진 박희순 이성민 염혜란 차승원 등 주연 배우들이 입을 모아 이렇게 밝혔다. 진한 블랙코미디의 향기를 가졌지만, 주인공들이 처한 처절한 상황을 보다 보면 웃고만 끝낼 수 없다는 설명이다.
이병헌은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 감독님에게 웃겨도 되느냐고 물었다"며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너무 재밌는 이야기인데 이게 박찬욱 감독님의 작품이 맞나, 내가 정확하게 바르게 읽은 게 맞는지 묻는 차원이었다"고 밝혔다. 자신의 받은 느낌을 시나리오를 쓴 감독에게 확인받고 싶었던 이병헌은 "이 작품, 웃긴 게 맞죠?"라고 되묻기도 했다.
물론 "그저 웃기기만 이야기는 아니었다"는 게 이병헌의 부연이다. "슬프면서 웃긴, 여러 감정을 느꼈다"며 "다양한 감정을 한 번에 느끼는 작품"이라고 놀라움을 표했다. 30여년간 쉼 없이 작품 활동을 하면서 다양한 장르와 소재에 도전한 이병헌에게 '어쩔수가없다'는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낯선 감흥을 일으킨 영화였다.
● "평범한 인물들이 맞는 극단적인 상황"
'어쩔수가없다'는 박찬욱 감독이 오랜 기간 꼭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여러 차례 밝힌 미국의 미스터리 소설 '액스'에서 모티프를 얻은 작품이다. 모든 것을 다 이뤘다고 믿는 순간 직장에서 해고된 가장 만수가 가족을 지키고 어렵게 마련한 집을 잃지 않기 위해 재취업의 전쟁을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병헌의 극의 중심인 만수 역이다. 평생 헌신한 제지회사에서 하루아침에 해고당한 만수는 자신만 바라보는 아내 미리(손예진)와 두 자녀를 위해 다시 취업전선에 뛰어들지만, 만만치 않은 경쟁자들이 있다. 제지 업계의 베테랑인 범모(이성민), 딸을 위해 재취업을 바라는 시조(차승원)가 그의 경쟁자다. 제지 회사에서 승승장구하는 선출(박희순)과도 묘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이병헌은 "영화의 인물들은 평범한데 굉장히 극단적인 상황들을 맞는다"며 "평범한 인물들이 극단적인 상황을 맞으면서 심리적인 변화와 행동의 변화가 일어나는데 그 변화를 관객의 이입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개연성 있게 표현하는 데 고민이 많았다"고 밝혔다. 실직한 가장, 재취업을 시도하는 아빠이자 남편의 모습은 일면 일상적으로 보이지만, 만수가 벌이는 일들이 극단적인 만큼 이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게 이병헌에게는 큰 과제였다는 의미다.
● "이렇게까지 세세한 부분도 신경을 쓰는구나..."
이병헌은 박찬욱 감독과 2000년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와 2004년 '쓰리, 몬스터'를 통해 두 차례 호흡을 맞췄다. 이번 '어쩔수가없다'는 20년 만의 재회이자, 3번째 만남이다. 20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병헌은 '광해, 왕이 된 남자' '내부자들' '남산의 부장들' '콘크리트 유토피아' '승부' 등 작품성을 인정받은 흥행작의 연으로 활약했고, '지. 아이. 조' 시리즈로 할리우드에 진출해 성공적인 행보를 걸었다. 최근 주연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을 통해 또 한번 글로벌 스타로 입지를 확고히 하고 있다.
다시 만난 박찬욱 감독은 이병헌을 '자극'했다고 한다. "예전에 함께 영화를 할 때는 제가 어리기도 해서 제 것만 보느라 벅차고 힘들었다"고 돌이키며 "박찬욱 감독님이 다른 감독님들과 차별화한 부분이 뭔지 딱히 말할 수 없었는데 20년 만에 다시 작업을 해보니 이렇게까지 세세한 부분을 신경 쓰고 관여할 수 있는지 놀라웠다"고 했다.
박찬욱 감독과 작업을 하면서 이병헌은 주변에서 자꾸만 권하는 '영화를 연출해 보라'는 제안에 더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됐다고 했다. "주변 여러 감독님들이 영화를 연출할 생각이 없느냐고 제안을 할 때가 있는데 저는 연출을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고 연기가 가장 좋다고 늘 생각한다"며 "이번에 박찬욱 감독님과 작업을 통해 '아, 나는 정말 연출은 못하겠구나' 싶었다. 거장이 되려면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옆에서 지켜봤다"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