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예산 ‘얼굴’의 힘, 감독의 '위기의식'에서 출발한 창작 돌파구
||2025.09.16
||2025.09.16
순제작비 2억원의 초저예산 영화 '얼굴'이 스크린에서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지난 11일 개봉 첫날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뒤, 다음날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에 1위를 내줬지만 개봉 2주째에 접어든 15일 다시 정상에 올랐다. 현재까지 누적 관객 수는 35만6732명, 누적 매출액은 37억원으로 이미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연상호 감독이 2018년 출간한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얼굴'(제작 와우포인트)은 제작 방식부터 주목을 받았다. 1000만 흥행 영화 '부산행'부터 '반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 등 최근 10여년간 주로 상업적인 작품에 집중한 연상호 감독이 연출하고 박정민, 신현빈 등 유명 배우들이 출연하지만 순제작비는 2억원에 불과하다. 독립영화에서도 '초저예산'에 속한다. 지난해 한국 독립·예술영화의 평균 순제작비(3억원)보다 낮은 규모다.
'얼굴'의 촬영은 3주 동안 총 13회차 동안 이뤄졌다. 연 감독과 평소 호흡을 맞춘 스태프들을 중심으로 20여명의 소수 정예로 꾸려 제작비를 최소화했다. 박정민은 무보수로 출연했고 다른 배우들 역시 적은 출연료만 받고 참여했다. 2억원으로 103분 분량의 장편영화를 만들 수 있던 이유다.
이런 실험은 연상호 감독의 '위기의식'에서 시작됐다. 팬데믹 이후 극장 관객 감소가 이어지며, 높은 제작비에도 흥행이 불투명해진 극장가의 현실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연 감독은 "'얼굴'이 마이너하다는 이유로 투자·배급사에서 거절당했다"며 "'꼭 투자를 받아야만 영화를 찍을 수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그 과정서 '얼굴'과 비슷한 주제를 다룬 SBS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며 연 감독은 예산과 상관없이 충분히 몰입할 수 있는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당신 돈으로 만들어보라"고 권하는 아내의 말에 용기를 얻어 평소 신뢰를 나눈 배우와 스태프를 발 빠르게 모아 제작을 추진했다.
팬데믹 이후 극장 개봉 영화를 만드는 데 '위기감'을 느끼는 건 연상호 감독만의 고민이 아니다. 실제로 박찬욱 감독 역시 올해 베니스영화제에서 신작 '어쩔수가없다'를 선보이며 전 세계적인 화두로 떠오른 '영화계 위기'를 언급했다. 박 감독은 "극장에서 (영화를)보는 문화가 끝나지는 않아도 축소될 수는 있다"며 "예산을 확보할 수 없는 시기가 오면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영화의 제작비는 점차 상승하고, 극장을 찾는 관객은 줄면서 투자가 위축된 상황에서 연상호 감독이 '얼굴'을 통해 시도한 제작 방식은 창작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새로운 도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 "분석하고 해석하는 재미"
'얼굴'은 앞을 보지 못하는 전각 장인 임영규(박정민·권해효)의 아들 임동환(박정민)이 40년 전 실종된 줄 알았던 어머니 정영희(신현빈)의 백골 시신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고 그 죽음의 진실을 추적하는 이야기다. 동환이 아버지의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던 PD 김수진(한지현)과 함께 어머니를 둘러싼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얼굴'은 태어나 단 한 번도 세상을 본 적 없는 시각장애인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글씨를 새긴 도장을 만든다는 아이러니한 설정과 남편도 아들도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영희의 미스터리를 통해 긴장감을 유지한다. 영화는 영희의 얼굴을 끝까지 숨기며 주변 인물들이 "못생겼다" "괴물 같았다"고 내뱉는 조롱과 혐오를 통해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과연 그녀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어떤 사건에 휘말렸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다섯 개의 인터뷰 챕터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며 부모 세대의 삶을 비추는 작품은, 앞을 보지 못하는 영규와 얼굴을 가린 영희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삶에서 아름다움과 추함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질문을 던진다. 특히 결말에서야 공개되는 영희의 얼굴은 관객들에게 묵직한 메시지와 여운을 남긴다. 사회가 찍은 '추하다'는 낙인의 잔혹함과 허무함을 드러내며 편견과 혐오라는 거울을 관객 앞에 내민다.
실제 관람객들은 "마지막 영희의 사진을 보고 생각이 많아진다" (joo******) "엔딩에서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블루&**)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생각하게 하는 영화였다"(무비천*) "영화가 끝나자마자 자연스럽게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는 오랜만이다" 등의 평을 남기며 작품이 던진 질문과 메시지가 관객들에게 울림을 남겼음을 보여준다. 젊은 영규와 아들 동환을 연기한 박정민 또한 "분석이나 해석을 하는 재미가 있는 영화"라며 작품의 매력을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