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포테이토 지수 97%] 가슴 아린 두 이름, ‘은중과 상연’
||2025.09.17
||2025.09.17
열한 살 때 만나 마흔두 살까지 이어진 30년의 시간 동안 은중과 상연은 친구였고 가족이었으며 때론 영원히 잊고 싶은 원망의 대상이었다. 내가 갖지 못한 걸 가진 상대를 동경하고 질투하면서도 깊은 우정을 나누고 그 우정이 어긋나 미움이 극에 달할 때도 있었지만 시간이 흘러 둘은 마침내 용서와 구원으로 나아간다.
'은중과 상연'을 간단히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두 친구가 보낸 30년의 시간을 우정과 원망, 질투와 동경의 감정으로 담아낸 작품이라는 짧은 소개는 한없이 부족하다. 두 친구가 얽힌 매 순간, 서로가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을 해부하는 듯 세심하게 포착하는 드라마는 그 다채로운 감정으로 두 인물의 인생을 묵직한 서사로 풀어낸다. 켜켜이 싸인 감정으로 이뤄진 드라마의 힘은 압도적이다. 15편에 이르는 이야기를 단숨에 보고 나면 가슴이 아린다. 진한 여운이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길 바라게 되는, 오랜 만에 드라마의 진짜 가치를 보여주는 작품이 탄생했다.
은중과 상연은 1990년대 중반 서울 인근에 만들어진 신도시의 한 학교에서 처음 만났다. 반지하에서 엄마와 살아가는 어린 은중(도영서)의 반에 화장실이 두 개인 신축 아파트에 이사를 온 상연(박서경)이 전학을 온다. '장관을 지낸 할아버지'를 둔 상연은 은중에게 선망의 대상. 하지만 '잘 사는 집' 아이들만 골라 편애하는 담임 선생님은 은중에게 상처를 주고, 이를 알지 못하는 상연도 은중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위축된 은중을 일깨우는 존재는 상연의 엄마이자 옆반 교사인 윤현숙(서정연). 자신도 어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은중에게 들려주면서 '아빠가 계시지 않는 건 슬픈 일이지 창피한 일은 아니다'고 말하는 현숙의 위로는 은중의 삶을 바꿔 놓는다.
드라마는 은중(김고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상연(박지현)이 10년 만에 찾아와 '더는 손을 쓸 수 없는 말기 암 환자'임을 밝히면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내가 나일 때 삶을 정리하고 싶다"고 말하는 상연은 은중에게 존엄사를 위한 스위스 동행을 부탁한다. 시간은 다시 거슬러 올라간다. 10대의 섬세한 감수성으로 우정을 나누다가 충격적인 사건으로 상처를 입은 은중과 상연은 서로의 삶이 요동치던 20대에 재회해 또 한 번 혼란을 겪고, 영화 프로듀서로 같은 일을 하던 30대 때 원하지 않게 얽혀 다시 깊은 상처를 준다.
● '그들'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
'은중과 상연'은 특별한 '사건'이 아닌 두 인물이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으로 단단하게 서사를 쌓아간다. 속마음을 감추고 시작된 선망과 동경, 질투를 넘어 다르기 때문에 겪는 갈등과 오해의 감정이 보는 이들의 가슴에도 저항 없이 스며든다. 은중이 선의라고 생각한 것들은 상연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고, 그래서 은중이 망가지길 바랐지만 그 독한 마음이 결국 스스로를 더 망가뜨리기도 했다. 어떤 순간에도 자신은 지킬 줄 아는 은중의 단담함은 믿음직스럽고, 남을 상처 입힐까봐 스스로에게 더 큰 상처를 주는 상연의 위태로움에는 짙은 연민이 느껴진다.
은중과 상연 사이의 감정은 꼭 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 시절'을 겪은 누구나, 혹은 '그 때'를 보내고 있는 누구나 느낀 이야기이자 감정으로 공감대를 확장한다. 결국 '나'의 이야기이고, '우리'의 감정으로 나아간다. 근래 만나기 어려운 수작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는 호흡이 긴 15부작이지만 몰입감도 높다. 은중과 상연의 인생에는 매 순간 결정적인 인물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과외 교사였던 상연의 오빠 천상학(김재원), 상연의 첫사랑이자 은중의 연인인 김상학(김건우), 딸에겐 애증의 존재이지만 은중에겐 삶을 바꿔 놓은 더 없는 존재인 현숙이 그렇다. 이 외에도 숱한 사람들이 은중과 상연 사이에서 질투와 자책, 선망과 원망, 연민과 우정의 감정을 만들어낸다. 온전히 그 감정을 느끼다 보면 15편의 이야기는 순식간이다.
'은중과 상연'의 탄생은 밀도 높은 극본을 쓴 송혜진 작가와 두 주인공의 삶을 수려하고 따뜻하면서도 때론 아프게 그린 조영민 감독의 완벽한 호흡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작품의 완성도를 책임진 결정적인 주역인 두 배우, 김고은과 박지현이다. 인물과 작품에 완전히 몰입한 배우가 발휘하는 힘이 강렬하다. 긴 설명보다 일단 보면, 두 배우의 눈부신 진가는 단번에 확인된다.
김고은은 늘 요동치는 상연의 곁에 있는 은중을 흔들림 없는 무게감으로 그린다. 연기는 물론 작품 선택의 선구안이 단연 돋보인다. 박지현은 이번 '은중과 상연'을 통해 지난해 영화 '히든페이스'에서 시작해 마침내 '박지현의 시대'가 열렸음을 알린다. 어느 얼굴이 진짜 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화무쌍하다. 김고은과 박지현은 최상의 호흡이다. '은중과 상연'은 절대 시즌2가 나올 수 없는 작품. 또 다른 작품에서 만나는 둘의 호흡이 벌써 기다려진다.
연출: 조영민 / 극본: 송혜진 / 출연: 김고은, 박지현, 김건우, 장혜진 등 / 장르: 드라마 / 공개일: 9월12일 / 시청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 회차: 15부작 / 플랫폼: 넷플릭스
[맥스무비 리뷰는 '포테이토 지수'로 이뤄집니다. 나만 보기 아까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반짝반짝 잘 익은 BEST potato(100~80%), 탁월하지 않아도 무난한 작품은 NORMAL potato(79~50%), 아쉬운 작품은 WORST potato(49~1%)로 나눠 공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