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은중과 상연’ 박지현 "누구나 어느 정도의 외로움은 있잖아요"
||2025.09.25
||2025.09.25
"어떤 관계는 정의 내릴 수 없는 것 같아요. 상연에게는 남은 시간도, 가족도, 배우자도 없어요. 대신 은중이가 삶에서 유일한 존재이죠. 그런데 '유일한 존재'라는 말로도 상연에게 은중을 온전히 설명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은중과 상연'(극본 송혜진·연출 조영민)에서 은중에게 삶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해 달라고 부탁하는 상연을 연기한 배우 박지현은 은중과 상연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하겠느냐는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했다. 작품은 매 순간 서로를 가장 좋아하고 동경하며 또 질투하고 미워하며 일생에 걸쳐 얽히고설킨 두 친구 은중(김고은)과 상연(박지현)의 이야기다.
박지현의 말처럼 10대부터 40대까지 이어지는 두 사람을 관계는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우정과 원망, 선망과 질투, 애증과 동경이 복잡하게 얽히며 깊은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25일 맥스무비와 만난 박지현은 "누구든 어느 정도 외로움은 있다고 생각한다"며 "상연의 결핍은 특수해 보일 수 있지만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감정이지 않을까 했다"고 말하며 상연의 입장에서 그의 고통과 선택을 이해했다.
상연은 엄마와 오빠 등 사랑받고 싶었던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못했다고 느끼며 은중을 부러워한다. 채워지지 않은 결핍으로 가장 좋아하던 은중에게 "네가 멀쩡한 게 싫어. 망가졌으면 좋겠어, 나처럼"이라며 소중한 것을 빼앗고 결국 절교를 하게 된다. 그 과정서 상연은 "나는 내가 하나도 아깝지가 않거든요"라는 말처럼 결국 자신마저 망가뜨리게 된다.
박지현은 상연을 연기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다고 했다. "상연뿐만 아니라 남들이 봤을 때 '왜 저래?'라고 말하는 캐릭터를 많이 했던 것 같다"고 웃으며 "어떤 인물이든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은 없다고 본다. 모든 행동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는 생각으로 캐릭터에 다가서면 못할 수 없는 연기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상연은 지금까지 연기했던 역할보다 이해하기가 훨씬 수월했어요. 대본에 유년 시절부터 죽음에 이르는 모든 시간이 담겨 있잖아요. 보통은 특정 시기만 연기하기 때문에 전후 맥락을 상상으로 채워야 하지만 이번에는 모든 과정이 그려져 있었죠. 대본 그대로 따라가면 됐고, 해석하는 데도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 박지현이 촬영 전에 눈물 쏟은 이유는?
박지현은 이번 작품에서 20대부터 40대까지 한 인물의 긴 연대기를 표현해야 했다. 그는 "어렵다기보다 배우로서 큰 축복이었다"고 했다. 극 중 상연의 변화는 뚜렷했다. 10대에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지만 20대에는 집안이 기울며 가난을 견뎌야 했고, 30대에는 영화 프로듀서로 성과를 이루지만 돈 때문에 아버지와 갈등을 겪는다. 은중을 배신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40대에는 원하던 부를 손에 쥐고 성공한 영화 제작자가 되지만 건강 악화로 고통받는다.
20대와 30대에 두 번의 재회를 하게 된 은중과 상연은 오해와 불편함 속에서 멀어지게 된다. 하지만 40대의 상연이 조력사망을 결정하고 은중에게 스위스로 떠나는 여정에 동행을 부탁하면서 두 사람의 우정은 새로운 길에 들어선다.
박지현은 40대의 젊은 나이에 말기 암을 앓으며 건강이 악화되는 상연을 그리기 위해 "책과 다큐멘터리를 참고하면서 공부했고, 단식을 하며 연구했다"고 밝혔다. 그는 무려 3주 동안 음식을 끊고 물과 아메리카노만 마셨다. 이 과정서 "몸은 마르는데 얼굴이 누렇게 뜨면서 붓는 변화를 경험했다"며 "진짜 촬영 때는 먹었고, 붓는 얼굴을 만들기 위해 촬영 당일에 집이나 숙소에서 두세 시간씩 펑펑 울었다"고 설명했다. 박지현은 30대 촬영을 마친 후 잠시 휴지기를 가졌을 때 홀로 단식을 하며 상연의 모습을 더욱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준비를 했던 것이다.
촬영 전에 눈물을 쏟은 것은 감정 조절을 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40대의 상연은 초연하고 덤덤해야 하는데 역량이 부족해서 눈물을 참기 어려웠다"던 그는 "눈물을 미리 빼고 가야지 현장에서 그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다"고 돌이켰다.
박지현은 상연을 연기하면서 죽음에 대한 가치관이 달라졌다고 고백했다. 그는 "이전까지는 죽음을 깊이 생각해 볼 이유도,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작품을 끝내고 나니 죽음이 삶과 얼마나 밀접한지 깨달았다"며 "살아간다는 건 결국 죽어간다는 것이고, 잘 살아가는 게 곧 잘 죽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짚었다.
"죽음을 무섭고 두렵게만 여겼다면 언젠가 마주하고 겪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어떻게 살아야 잘 죽을 수 있을까'라는 철학적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됐고요. 시한부의 삶을 연기하면서 죽음을 마냥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고 열린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 것 같습니다."
극 중 조력사망을 다루는 것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단어 자체가 주는 무게가 있지 않나. 사회적으로,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법적으로도 민감한 주제라 정말 조심스럽게 접근했다"며 "공부도 많이 했고, 작품을 보면서 불쾌하거나 상처받는 분들이 없도록 조심스럽게 다가섰다"고 강조했다.
● "김고은 아니라면 천상연도 없었을 것"
박지현은 상연을 연기하며 겪었던 과정에서 은중으로 함께 호흡한 김고은의 존재가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는 "상연은 서사도 많고 감정의 폭도 넓어 정말 '날 것'의 다양한 도전을 해보고 싶었고, 또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한된 시간 안에서 여러 시도를 마음껏 던졌는데 그럴 수 있었던 이유가 고은 언니가 버팀목으로 지지해 줬기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욕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다 시도하고 (연기적으로)다 던졌는데, 그 모든 걸 고은 언니가 맞아줬다. 단단한 바위 같은 존재였기에 계란을 던지든, 쇳덩이나 불을 던지든 무너지지 않고 굳건히 버텨줬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분명 고은 언니도 힘들고 외로운 순간이 있었을 텐데, 현장에서 그걸 생각하지 못하고 '선배니까'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니까'하며 여러 시도를 했던 것 같아요. 제가 그러면 언니는 '괜찮아' '이건 아니야'라며 인내해 줬죠. 그런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 지금의 상연이 완성됐어요."
그 때문에 박지현은 연기 호평에 대해 "제가 아니라 다 고은 언니에게 가야 된다"며 "촬영이 끝난 뒤에야 언니도 심적으로 힘들었다는 걸 알게 됐는데, 김고은이 아니라며 상연이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진심을 토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