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고있는 의적 홍길동은 사실 흉악한 도적이었다
||2025.09.26
||2025.09.26
연산군 시절, 조정은 홍길동의 이름만 들어도 긴장했다. ‘연산군일기’에는 “도적 홍길동이 무리를 이끌고 충청도의 민가를 습격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 그는 ‘첨지중추부사’라는 관직을 사칭하고 관복을 입고 다니며 관청을 드나들었다는 대목도 보인다. 실제로 왕은 홍길동 체포령을 내리며 지방관에게 철저한 수색을 명했고, 임무를 소홀히 한 관리가 탄핵당한 사례도 전해진다.
이처럼 사료 속 홍길동은 단순한 전설이 아닌 국가 행정에 부담을 주는 현실적 위협이었다. ‘의적’이라기보다는 조직적으로 활동하는 ‘강도 수괴’로 분류되었고, 충청 일대 백성들의 불안을 키운 존재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홍길동의 모습은 전혀 다른 색을 입는다. 허균은 그에게 신출귀몰한 도술과 기발한 계책을 부여해 민중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의적으로 재탄생시켰다. 관청의 문서를 빼앗아 불태우고, 부패한 권력자들을 골탕 먹이는 모습은 현실에서는 위협이었으나 문학에서는 해방의 상징이 되었다.
별빛 아래에서 흘린 눈물 또한 독자에게 강렬한 울림을 주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한다”는 서얼의 비애는 개인의 울분을 넘어 신분제 사회 전체를 고발하는 목소리로 읽혔다.
허균은 서얼·천민과 교유하며 사회 제도의 모순을 피부로 느꼈다. 그러나 직접적인 정치 비판은 목숨을 위협할 수 있었기에, 그는 소설이라는 우회적 방식을 택했다. 홍길동을 통해 현실의 불평등을 꼬집고, 이상적인 나라 ‘율도국’을 제시한 것이다.
결국 사료 속 홍길동은 “관복을 훔쳐 입은 도적”, “민가를 약탈한 무리의 두목”이었지만, 문학 속에서는 차별에 맞서 이상을 건설한 영웅으로 자리 잡았다. 기록과 상상, 그 괴리야말로 홍길동이라는 이름이 500년 넘게 사람들의 흥미와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