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이완용’ 일본에 한국의 국가기밀을 판 이 남자의 깜짝 놀랄 근황
||2025.10.12
||2025.10.12
1990년대 초, 해군 소령 고영철은 진급 누락에 대한 불만으로 일본 후지TV 서울지국장이었던 시노하라 마사토와 결탁하여 대한민국 국군의 군사 기밀을 일본에 판매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정보 유출을 넘어,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했으며, 당시 한국의 간첩죄 처벌 법체계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고영철은 1990년 5월부터 1993년 7월까지 약 3년간 시노하라에게 2급 및 3급 군사기밀을 포함한 총 50여 건의 군사 관련 정보를 넘겼다. 이 정보에는 공군 레이더 탐지거리 도표, 지대공 미사일 위치 현황, 방공부대 편제표, 한미훈련계획, 서해안 해병대 병력 배치 현황 등 민감한 군사 기밀이 포함되어 있었다.
고영철은 또한 국방정보본부에서 작성하는 중요 군사 정보인 ‘북한 일반 동향’ 등의 문건을 입수하여 일본 측에 정기적으로 전달했다. 나아가 망원렌즈 카메라를 휴대하며 한국군 및 미군의 군사 시설과 훈련 상황을 촬영하여 슬라이드로 제작, 보관하기도 했다.
더욱 대담해진 시노하라는 이러한 정보를 일본 군사 잡지 ‘마루’, ‘PANZER’에 ‘야사하라 마사사다’라는 필명으로 기고하여 군사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이 논문에서 원문을 그대로 인용했다는 점이 발각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일본 주재 한국 국방무관이 시노하라가 기고한 군사 논문을 통해 기밀 유출 사실을 인지하고 대한민국 국방부에 통보하면서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수사 과정에서 고영철과 시노하라가 구속되었다.
재판 결과, 고영철은 1심에서 징역 7년, 2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으며, 최종적으로 3심에서 징역 4년의 실형이 확정되어 1997년 만기 출소했다. 시노하라는 1심에서 징역 4년, 2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추방되었다.
고영철 사건 당시, 가담자들에게 간첩죄가 아닌 형법상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가 적용되었다. 이는 당시 한국 형법상 간첩죄의 적용 대상이 ‘적국’으로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법적 허점은 한국을 ‘스파이 천국’으로 만들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으며, 간첩죄 처벌 범위를 ‘외국’으로 확대하는 법 개정 논의가 촉발되었다.
징역 4년을 복역하고 출소한 고영철은 일본 다쿠쇼쿠대학의 전임 연구원으로 근무하며 북한 문제 및 안보 전문가로서 활동했다. 또한, 과거 한국통일진흥원 전임교수, 국방정보본부 북한정보 분석관 등을 역임한 경력을 바탕으로 칼럼니스트, 방송 해설가, 강연 활동을 이어갔다. 2019년에는 한 방송에 출연하여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야 한다는 망언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