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포테이토 지수 92%] ‘세계의 주인’, 작지만 울림 깊은 이야기로 건네는 삶의 위로
||2025.10.16
||2025.10.16
전교생 가운데 딱 한 명만 '서명'을 안 했다. 그 한 명은 반장 이주인.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인기도 많은, 한 마디로 '핵인싸' 소녀다. 그런데 주인은 왜 서명을 하지 않고 버티는 걸까.
'세계의 주인'은 서명운동을 둘러싼 소동을 계기로 열여덟 살 소녀 주인과 그 주변 사이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갈등에 주목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전교생이 동참한 서명을 주인만 거부를 하면서, 주인은 서명을 강요하는 반 친구 수호와 갈등을 크게 빚는다.
이때 주인이 홧김에 내뱉은 '어떤' 말이 교실 분위기를 한순간에 얼어붙게 만든다. 그 이후 주인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형태는 같아도 공기가 달라진 교실처럼, 주인을 바라보는 친구들의 시선은 미묘하게 달라진다. 한번 생긴 균열은 메우기가 어려운 법.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맺어진 관계가 얼마나 깨지기 쉬운지 영화는 그 순간을 포착해 보인다.
그럼에도 주인은 다시 관계를 회복하려 노력한다.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친구들에게도 먼저 말을 거는 용감한 소녀다. 이 영화는 회복에 대해서 말하는 영화다. 관계뿐 아니라 삶의 회복을 말한다. 사실 주인에게는 과거에 상처를 겪은 일이 있고, 서명을 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도 그러한 과거와 관련이 있어서다.
그렇다고, 상처를 다뤘던 다른 작품들 속의 주인공처럼 주인이 과거에 얽매인 인물은 아니다. 주인은 과거를 딛고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이다. 학교에 가고, 태권도를 배우고, 집안일도 돕고, 봉사활동까지 하면서 삶을 충실히 채워간다. 오히려 그의 과거를 아는 주변인들이 그의 과거에 갇혀 있는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단편적인 사실로만 섣부르게 판단하고 결정하는 냉혹한 세상을 비춘다. 일상에서 편견과 낙인이 어떻게 작동해서 한 사람을 사회로부터 고립시키고 소외시키는지, 그로 인해 내 삶의 주인으로서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상처입은 이들에게 일상을 되찾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영화는 내내 질문을 던진다. 이번 영화에는 감독의 더 깊고 날카로운 삶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다.
그래서 '주인의 세계(삶)'가 아닌 '세계(삶)의 주인'이라는 영화의 제목은 묵직하게 다가온다. 작지만 단단한 이야기로 우리 삶에 위로를 건네는 윤가은 감독의 마법이, 이번 영화에서도 작지 않은 울림을 선사한다.
영화에는 특히나 연애에 관심 많은 주인을 통해서 10대들의 사랑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주인은 학교에서 남자친구와 키스를 하고, 친구들과 '19금' 대화도 서슴지 않는다. 주인에게 성과 사랑에 솔직하고 대담한 요즘 10대들의 모습이 투영돼 있다.
영화에서 그려지는 사랑은 이성 간 사랑만 있지 않다. 주인은 가족, 친구, 그리고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일군다. 그 안에서 크고 작은 갈등을 일으키며 힘들어하기도 하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직접 부딪쳐 해결하려 노력한다. 다양한 관계에서 다양한 사랑을 가꿔가는 주인의 여정은 사랑을 통해서 삶을 알아가는 여정이기도 한 것이다.
'세계의 주인'에 감동의 깊이를 더한 건, 배우들의 공감을 얻은 연기다. 주인을 연기한 서수빈은 연기 경험이 전무하지만 10대의 복잡미묘한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이야기를 힘 있게 끌고 간다. 숨은 원석을 발굴해내는 능력이 탁월한 감독의 안목을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수인의 상처를 함께 짊어지고 함께 나아가는 엄마 강태선을 연기한 장혜진은 감독이 발굴한 원석이 반짝일 수 있도록 서수빈을 지탱하며 이야기를 함께 이끈다.
'세계의 주인'은 차가운 세상을 어린 아이들의 시선을 통해 따뜻하게 보듬었던 '우리들' '우리집'에 이어 6년 만에 선보이는 윤가은 감독의 세 번째 장편 작품이다. 이 영화는 제50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최초로 경쟁 부문에 초청됐고, 제9회 핑야오국제영화제 로베르토 로셀리니상 심사위원상과 관객상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았다.
각본·감독 : 윤가은 / 서수빈, 장혜진, 김정식, 강채윤, 이재희, 김예창 / 제작 : 세모시, 볼미디어 / 배급 : 바른손이앤에이 / 장르 : 드라마 / 개봉: 10월22일 /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 러닝타임: 119분
[맥스무비 리뷰는 '포테이토 지수'로 이뤄집니다. 나만 보기 아까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반짝반짝 잘 익은 BEST potato(100~80%), 탁월하지 않아도 무난한 작품은 NORMAL potato(79~50%), 아쉬운 작품은 WORST potato(49~1%)로 나눠 공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