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세계의 주인’으로 돌아온 윤가은 "영화로 만들 수 있을까 무섭단 생각도"
||2025.10.20
||2025.10.20
(이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10대들의 성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피하고 싶었던 어떤 부분 때문에 이야기를 쓰기가 쉽지 않았어요. 이것 때문에 잡았다 놨다를 반복했어요."
오는 22일 개봉하는 영화 '세계의 주인'으로, 6년 만에 새 작품을 선보이는 윤가은 감독이 한 말이다. 새 작품을 내놓기까지 6년의 시간이 걸린 데에는, 그 사이 준비하다 엎어진 작품도 있지만, 그보다는 오랜 시간 가슴에 품어야 했을 만큼 쉽사리 풀어낼 수 없었던 이야기에 대한 감독의 깊은 고민이 엿보였다.
●10대들의 솔직한 성과 사랑 이야기
'세계의 주인'은 전교생이 참여하는 서명운동에 혼자서만 참여하지 않는 한 여고생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 영화는 연애에 관심이 많지만 동시에 연애가 쉽지 않은 열여덟 살 주인(서수빈)을 통해 10대들의 성과 사랑을 다룬다.
'세계의 주인'은 10대 청소년인 주인공을 통해서 열 살 남짓의 어린 소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던 '우리들'이나 '우리집'보다 더 대담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주인을 연기한 서수빈과 그 주변 인물들을 연기한 김정식, 강채윤, 김예창 등 20대 배우들이 앙상블을 이뤄 10대들의 솔직한 성과 사랑을 그렸다. 연기 경험이 거의 없거나 적은 신인 배우들이지만 10대 시절을 경험한 지 비교적 얼마 되지 않은 이들과 작업한 덕분에 작품에 적잖이 도움을 받았다.
"배우들에게 시나리오를 줬더니 대사를 다 외우고 연습해 왔어요. 어떤 대사나 장면에 대해서 '어떤 의미냐'고 질문을 하거나 '이렇게 하면 어떠냐'고 제시를 하기도 했죠. 이런 식으로 도움을 받는 게 처음이라 어린 배우들과 작업할 때와 다른 재미를 느꼈어요."
●"'흔한 일'이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세계의 주인'이 풋풋한 설렘을 주는 하이틴 영화는 아니다. 어린 아이들의 시선으로 냉혹한 세상을 비춘 윤가은 감독답게 이번 작품에서도 주인을 통해서 성의 밝고 건강한 면과 더불어 어둡고 무거운 면까지 다룬다. 영화는 성폭력 문제로 이야기를 확장시켜 현실성을 부여한다. 윤 감독은 이를 "판타지를 제거한 하이틴 영화"라고 표현했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공부하면 할수록 성폭력은 제 인생 경험에서도 그렇고 너무나 흔하고 일상적인 폭력이라고 생각됐어요. 그런데도 가장 이야기되지 않는 폭력이기도 해요. 그것이 특수하고 비일상적인 일이 아니라 우리 삶에서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당연히 관련 소재를 다루는 것은 감독에게 큰 고민을 안겼다. 취재를 하다가 의학 서적까지 파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윤 감독은 "공부를 하면서 도움을 많이 얻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아득해지는 경험도 했다"면서 "이것을 영화로 다룰 수 있을까란 생각에 무섭기까지 했다"고 작품을 준비하면서 느낀 부담감을 털어놨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제 생각이 잘못됐다는 걸 알았어요. 이 영화가 감히 성폭력이나 그 생존자들을 대표할 수 없는 거잖아요. 계속 재생성되는 피해자의 전형적인 얼굴이 있는데 그것만이 유일한 진실은 아니라고, 또 하나의 사례로 또 다른 얼굴로 그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 정도의 마음을 가지고 작업을 했어요. 실제로 저한테 그런 고정관념을 깨준 생존자 분들도 있었고요."
●"작품을 또 할 수 있을까, 고민해"
'세계의 주인'은 최근 언론배급 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뒤 감독의 삶에 대해 더욱 깊어진 통찰로 "올해의 한국영화"로 언급되며 언론과 평단의 찬사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이를 보여주듯, 지난달 제50회 캐나다 토론토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것을 시작으로 제9회 중국 핑야오국제영화제에서 관객상 등 2개 부문의 상을 수상하고, 제41회 폴란드 바르샤바국제영화제 국제영화비평연맹상을 수상하는 등 해외 영화제의 초청과 수상이 잇따르고 있다.
그럼에도 윤가은 감독은 자신은 타고난 영화적 재능이 없다면서 겸손을 보였다. 언론배급 시사회 당시에도 "마지막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작업했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그의 말은 감독의 겸손한 성정과 더불어 영화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감독조차 불안감을 느낄 만큼 영화계의 녹록지 않은 현실을 짐작게 했다.
"저는 봉준호 감독님이나 박찬욱 감독님 같은 영화적 재능은 없어요.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스타일이에요. 공부를 하는데도 여전히 영화는 잘 모르겠어요. 거기다가, 영화산업이 빠르게 변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다음 작품을 또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늘 있어요. 지금 잠깐 직업이 있게 됐지만 잠깐이 아닌 직업을 갖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