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굿뉴스’로 돌아온 류승범 "저는 오늘만 사는 사람이에요"
||2025.10.22
||2025.10.22
일본에서 여객기 납치 사건이 발생한다. 일본 당국은 납치범들과의 협상에 실패한다. 이 상황에서 대한민국 권력의 중심에 선 중앙정보부의 부장 박상현(류승범)이 사건을 해결하고 국제 사회와 일본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려고 한다. 그는 "성공하면 내 덕, 실패하면 남 탓"이라는 태도로 해결사 아무개(설경구)와 공군 중위 서고명(홍경)을 압박한다. "대체 무슨 수로 회유를 하느냐"는 아무개의 질문에 박상현은 태연하게 답한다. "잘 달래서?"
지난 17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굿뉴스'(감독 변성현)에서 배우 류승범이 연기한 박상현은 그동안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던 중앙정보부장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결을 보여준다. 강렬한 카리스마나 권위적인 모습 대신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그는 흰 우유를 마시고, 틈만 나면 볼펜을 세우며 노는 엉뚱한 인물이다. 이런 천진한 모습 뒤에는 냉혹함과 책임을 회피하는 권력자의 '이중성'이 숨어 있다. 류승범은 아이 같은 말투과 행동 뒤에 숨은 인물의 모순을 통해 블랙코미디 특유의 아이러니를 극대화했다.
영화가 공개 당일 맥스무비와 만난 류승범은 "'굿뉴스'는 저에게 굉장히 새로운 느낌의 작품이다. 블랙코미디 장르가 처음이었는데 소재 자체가 영화적으로 접근하기 좋았다. 관객에게 대화를 거는 것도 그렇고 감독님이 표현하는 방식이 새로웠다"며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정말 궁금하다"고 했다.
그는 처음 변성현 감독으로부터 '박상현이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60대 중앙정보부장'이라는 설명을 듣고 "엄청난 숙제였다"고 돌아봤다. "특성이 명확한 캐릭터였던 만큼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뻔한 캐릭터를 연상했다. 저와도 거리가 먼 인물이었기에 감독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대본을 수없이 봤다"고 말했다.
'굿뉴스'는 1970년 3월 실제로 발생한 일본 항공기 납치 사건 '요도호 사건'을 모티프로 했다. 일본 적군파가 민항기 요도호를 납치해 북한으로 망명하려 한 사건을 바탕으로 영화적 상상력을 더했다. 작품은 아무개와 서고명이 납치된 비행기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서울에 착륙시키려는 긴박한 상황을 블랙코미디로 풀어냈다.
● 충청도 사투리로 박상현을 표현한 이유
역할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류승범은 "박상현이 나쁜 사람인 건 분명하지만, 그렇게 보이지 않았으면 했고 그것이 반전을 줄 수 있다고 봤다. 겉모습에서 '악함'을 지웠을 때 더 무섭고 위험한 인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극 중 박상현이 우유를 마시거나 볼펜을 세우는 장면은 변성현 감독의 의도적인 설정이었다. "감독님은 박상현을 아이 같은 인물로 표현해 미성숙함을 드러내고 싶어 했다"며 "1970년대 중앙정보부장과 미성숙함이 어울리지는 않지만, 변성현 감독은 뻔한 인물을 원하지 않았고 그 낯섦이 캐릭터를 더 흥미롭게 만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류승범은 "대본을 읽는 순간 충청도 사투리가 직관적으로 떠올랐다"며 자신이 직접 아이디어를 제안했다고 밝혔다. 그는 "충청도 사투리는 실제 표현 방식과 의도가 다르게 들릴 때가 있다고 하지 않나. 박상현을 연구하면서 그 특성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처음엔 감독님이 의아해했지만, 실제 리딩 때 제가 준비한 연기를 보고 받아들여줬다"고 했다.
● 류승범이 처음에 '굿뉴스'를 거절했던 이유
앞서 제작발표회에서 류승범이 처음에는 출연 제안을 거절했던 일화가 공개됐다. 또 다른 출연작을 끝낸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개인적인 휴식을 갖고 싶었지만 변 감독은 "12시간 같이 있으면서 술을 마셨고, 만취된 류승범을 상대로 승낙 받았다"고 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촬영이 끝날 때 즈음에 캐스팅 제안을 받았어요. 개인적으로 시간을 갖지 못하고 다음 작업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 배우와 작품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아야 된다고 보거든요. 그것 때문이지 작품에 흥미가 없었던 건 아니었어요. 감독님과 제가 동갑내기인데, 개인적으로 이 분이 어떤 분인지 궁금해서 긴 시간을 보냈죠.(웃음)"
류승범은 "제가 뭐라고 (감독님에게)'설득됐다'는 표현을 쓰는 건 조심스럽다"며 술자리에서 "계속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열정적으로 작업을 해나가는 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변성현 감독님이 '뻔한 거는 싫다'고 했는데 어떻게 하면 예측을 벗어나고 확장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는 분이 아닐까 했죠. 옆에서 지켜보는데 매력적이더라고요. 작업 중간에 오아시스 음악을 세팅했는데 환경도, 상황도 달랐지만 동갑으로 묘한 연대감도 느낄 수 있었어요."
변성현 감독은 "류승범이 현장에 가져오는 대본은 메모가 빽빽하고 너덜너덜해져 있었다"며 "많은 경우의 수를 준비하고 그걸 바탕으로 현장에서 본능을 발휘하는 것 같더라"고 촬영 당시를 떠올렸다. 류승범은 "캐릭터를 준비하는 정해진 스타일은 없다. 작품과 상황에 맞추는 편인데 '굿뉴스'는 대본을 읽을수록 새로운 게 보였다. 그걸 찾아내야 될 것 같은 생각으로 대본을 많이 들여다봤다"고 강조했다.
"해석의 여지가 다양하더라고요. 그렇게 탐구하다 보면 작품이 저를 끌어들이는 순간이 있어요. 저는 촬영하는 시간도 좋지만 대본을 받고 캐릭터를 상상하고 만드는 과정이 정말 행복해요. 다 열려 있는 그 시간이 너무 자유롭고 즐겁죠. 집에서 저는 연습을 하고 옆에서 와이프와 아이가 웃고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도 들죠. 그 시간을 진심으로 즐기는 편이에요."
● 공백기 이유? "저는 오늘만 사는 사람이다"
영화 '용서는 없다' 이후 15년 만에 재회한 설경구에 대해 류승범은 "저에게 많은 영감과 영향을 준 선배님과 같이 작업할 수 있어서 기쁘고 감사했다"고 돌아봤다. 첫 호흡을 맞춘 홍경에 대해서는 "왜 사람들이 홍경을 좋아하는지 느꼈다. 정직하고 진솔한 느낌을 받았다. 사적인 부분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진실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2000년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데뷔한 뒤 여러 작품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던 류승범은 한동안 해외에 머물며 독립영화 외에는 연기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2020년 슬로바키아 출신의 화가인 아내와 결혼했고 같은 해 6월 딸을 낳았다. 이후 2023년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과 지난해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시리즈 '가족계획', 그리고 '굿뉴스'까지 꾸준하게 작품에 출연하고 있다.
"사실 작품을 쉰 것도, 다시 일하는 것도 어떤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저는 오늘만 사는 사람이거든요. 과거나 미래에 있지 않고 오늘, 사실 오늘도 아니고 지금에 집중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렇게 그 순간순간에 집중하면서 시간이 흘러간 것 같아요."
또 언제 작품 속에서 류승범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차기작에 대한 질문에 류승범은 "현재 준비하고 있다"며 "(회사에서)얘기하지 말라고 하더라"고 미소 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