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 여왕’ 김연아 등장 이전 한국인들 열광시켰던 비운의 피겨스케이터
||2025.11.02
||2025.11.02
1990년대 말, ‘피겨 여왕’ 김연아가 등장하기 전 한국 국민을 열광시킨 한 재미동포 소녀가 있었다. 바로 ‘비운의 피겨 천재’로 불리는 남나리(Naomi Nari Nam)다. 1985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그는 5세에 스케이트를 시작, 8세에 올림픽 코치에게 발탁되어 기량이 급성장했다.
남나리는 만 13세 7개월의 나이로 출전한 1999년 전미 선수권 시니어 무대에서 깜짝 은메달을 차지하며 피겨계를 놀라게 했다. 우승 후보 미셸 콴에 이어 2위를 기록했으며, 3년 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될 사라 휴즈를 4위로 밀어냈다.
이 활약은 IMF 외환위기로 힘든 시기를 보내던 한국을 열광시켰다. 당시 야구 스타 박찬호, 선동열과 함께 1999년 청와대가 선정한 ‘한국을 빚낸 인물’에 선정될 정도였다. 귀국 당시 김포공항에는 취재진이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박찬호·박세리 못지않은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꽃길은 짧았다. 국제빙상연맹의 15세 미만 국제대회 출전 금지 규정으로 세계 선수권 출전은 불발됐다. 2000년 7월에는 트리플 러츠 점프 훈련 중 고관절이 골절되는 큰 부상을 입었고, 이는 남나리의 선수 생활 최대 위기였다. 고난도 점프를 포기하고 2005년 페어(2인조)로 전향하며 재기에 나섰으나, 고질적인 엉덩이뼈 부상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2008년 10월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13세에 세계적 스타의 잠재력을 보였던 남나리는 결국 부상 악재에 발목이 잡혀 올림픽 메달의 꿈을 끝내 이루지 못했다. 이후 지도자로 변신해 평창 올림픽을 꿈꿨으나 이마저도 팀 해체로 무산되며 비운의 굴곡진 스케이터로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