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발전소를 서울 강남에 지으면 좋은 점
||2025.11.03
||2025.11.03
“원전을 강남에 짓자”는 말이 인터넷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처음엔 농담이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진지하게 그 ‘장점’을 조목조목 써내려갔다. 풍부한 수자원 확보, 송전 손실 감소, 사회적 갈등 비용 절감, 지역 난방 공급, 일자리 창출, 심지어 집값 안정화까지. 말 그대로 ‘강남 원전론’이다. 듣기엔 황당하지만, 논리는 의외로 치밀했다.
우선, 한강은 냉각수 확보 측면에서 이상적인 입지다. 원자력 발전은 냉각수 공급이 생명인데, 한강은 연중 일정한 수온과 유량을 유지한다. 지금의 발전소들은 대부분 바다 근처에 세워져 있지만, 내륙의 한강 역시 열 효율 면에서 나쁘지 않다. 송전 거리도 짧아진다. 현재는 발전소에서 수도권까지 전기를 보내는 데 막대한 송전비가 든다. 전력선 손실률이 전체 발전량의 약 3~4%에 달한다. 만약 강남에 발전소가 있다면, 송전 비용은 사실상 ‘제로’에 가까워진다.
두 번째 이유는 사회적 비용이다. 원전 건설은 늘 “우리 동네는 안 된다”는 님비(NIMBY : Not In My Back Yard, 내 뒷마당에는 안돼 – 지역 이기주의) 갈등을 낳는다. 하지만 서울 중심부, 그것도 강남에 짓는다면? ‘안전하다면 어디든 가능해야 한다’는 논리가 실험대에 오른다. 즉, 원전 기술의 안전성을 직접 검증할 상징적인 선택지라는 것이다. “서울에 지을 수 없다면, 그건 안전하지 않다는 뜻이다”라는 명제가 역으로 입증되는 셈이다.
게다가 지역 난방 문제도 흥미롭다. 원전은 냉각 과정에서 버려지는 막대한 열을 이용해 지역 난방에 공급할 수 있다. 실제로 핀란드, 체코 등은 원전의 폐열을 도시 난방에 활용하고 있다. 강남 한복판에 원전이 있다면, 겨울엔 난방비가 폭락할지도 모른다. 심지어 ‘따뜻한 논밭’, ‘한강 어류 자원 회복’ 같은 기괴하지만 논리적인(?) 파생 효과까지 거론됐다.
물론 이 논의는 곧 비틀린 현실 풍자로 바뀌었다. 누군가는 “수도권 인구 밀집 현상 해결이라니, 그건 인구를 날리겠다는 말 아니냐”고 쏘아붙였다. 또 “북한이 노리기에 딱 좋은 타깃”이라는 냉소도 쏟아졌다. 한마디로, ‘좋은 점 리스트’가 사실상 ‘재앙 시나리오’로 변질된 셈이다. 하지만 이 역설이 바로 핵심이다. 원전의 위험성을 부정할 수 없으면서도, 수도권은 끝없이 전기를 소비한다. 즉, 우리가 전기를 쓰면서도 ‘남의 지역에만 짓자’고 하는 모순을 드러낸 것이다.
만약 진짜로 강남 한복판, 예를 들어 잠실 롯데타워 옆에 원전이 들어선다면? 안전 설계 기준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강화될 것이다. 도심형 원전의 개념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 이미 소형모듈원자로(SMR)는 이런 도시형 전력 모델로 개발되고 있다. 사고 확률은 낮지만, 공포는 여전히 남는다. 원전의 안전성보다 ‘심리적 거리’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결국 “강남 원전론”은 원전을 찬성하거나 반대하기 위한 논쟁이 아니다. 우리가 얼마나 ‘편리함의 이면’을 외면하고 사는지를 꼬집는 풍자다. 지방에는 지어도 되고, 내 집 옆에는 안 된다는 이중 잣대. 전력 과소비의 책임을 외곽 지역에 떠넘기는 현실. 그 모든 위선이 ‘강남 원전’이라는 한 문장에 담겨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