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직업’도, '7번방'도 아닌...류승룡의 새 대표작 '김 부장 이야기'
||2025.12.01
||2025.12.01
그 어떤 배우도 표현할 수 없는 50대 가장이 겪는 희로애락의 정수를 보여준 류승룡이 대표작을 새롭게 만들었다. 1600만명을 사로잡은 영화 '극한직업', 1000만 관객을 울리고 웃긴 '7번방의 선물', 배우로 진가를 증명한 '최종병기 활'을 넘어 이제 '김 부장 이야기'가 그의 출연작 목록에서 가장 먼저 거론될 듯하다.
지난달 30일 막을 내린 JTBC 토일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극본 김홍기 윤혜성·연출 조현탁)가 가슴을 울리는 묵직한 여운으로 오래 기억될 작품으로 남았다. 진정으로 가치 있는 행복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50대 김낙수의 삶이 세대를 불문하고 시청자들과 공감대를 나누고 있다. 처음에는 그저 '꼰대'로 비치는 영업팀 부장님으로 보인 김낙수의 삶은 대기업에서 떠밀려 퇴사한 뒤 온갖 풍랑을 겪으면서 진짜 행복을 찾는 여정으로 나아갔다.
'죽을 고비를 11번 넘는 김낙수'라는 조현탁 감독의 설명처럼 류승룡은 12편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라면 한 번쯤 겪어봄직한 비애와 절망, 희망이 교차하는 순간들을 능청스러우면서도 진솔하게 표현했다. 오직 류승룡이어서 가능한 연기다. 그를 중심으로 배우들의 앙상블과 원작 소설을 뛰어넘은 극본, 섬세한 연출까지 어우러지면서 두고두고 거론될 수작으로 남게 됐다.
● "룡두룡미의 드라마" 소통의 정석 보여준 배우
류승룡은 이번 '김 부장 이야기'의 방송을 앞두고 "김낙수 부장이 전면에 나섰지만 우리의 미래, 누군가의 과거, 나의 이야기일 수 있다"며 "전 세대를 아우를 수 있고 나를 투영할 수 있는 드라마"라고 밝혔다. 대본에서 류승룡의 마음을 빼앗은 김낙수는 결국 시청자의 마음도 가져갔다.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는 김낙수 부장의 행동들은 시련을 거듭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갔고, 25년 간 쉼 없이 달리면서 악착같이 매달린 '대기업 부장'이라는 타이틀을 내려 놓은 순간 평생 성실하게 살아온 중년 가장이 증명한 삶의 가치가 비로소 진가를 드러냈다.
류승룡은 방송을 마치고 제작진을 통해 "정말 진심을 다해 촬영했다"고 돌이켰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다시는 못 할 만큼 열정과 최선을 쏟아부었다"며 "오히려 (시청자들로부터) 더 큰 위로와 선물을 받은 것 같아 깊은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또한 "'김 부장 이야기'가 여러분의 삶 속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한 번쯤 돌아볼 수 있는 작품이 됐길 바란다"며 "우리가 유한한 가치를 향해 애쓰고 성취해 나가는 일도 중요하지만 다음 단계를 따뜻한 마음으로 유연하게 준비하는 지혜도 함께 떠올려보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드라마가 끝난 직후 시청자들은 SNS를 통해 '룡두용미의 드라마', '긴 제목에서 모든 게 빠지고 오직 김낙수만 남았다' '나는 뭘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지 종종 멈춰 서서 생각해 보며 살아야 한다' 등 깊은 공감과 울림을 표현하는 리뷰를 공유하고 있다.
이에 류승룡도 등판했다. SNS를 통해 시청자들의 리뷰 등 다양한 반응에 일일이 답변하는 등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김 부장 이야기'가 결코 끝나지 않는 이야기임을 알리고 있다. 배우가 작품을 온전히 책임지면서 완성도를 높이고, 그에 만족한 시청자들이 쏟아내는 여러 반응까지 꼼꼼하게 챙기는 '소통의 정석'을 보여주는 행보다.
류승룡은 김낙수 부장이 25년 간 대기업 통신사 ACT그룹에 헌신한 것처럼 지난 20여년 동안 쉼 없이 작품 활동에 몰두해왔다.
특히 2011년 김한민 감독의 '최종병기 활'과 이듬해 주연한 민규동 감독의 '내 아내의 모든 것'을 통해 한국영화에서는 본 적 없는 개성 강한 캐릭터를 소화해 흥행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10년 동안 '광해, 왕이 된 남자' '7번방의 선물' '명량' '극한직업'까지 4편의 영화로 1000만 흥행을 일궜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과 맞붙은 왜군 장수가 됐다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채 어린 딸을 돌보는 애틋한 아빠가 되기도 했다. 주연 영화로 1000만 흥행작 4편을 보유한 주인공은 류승룡과 송강호가 유일하다.
특유의 친근한 매력을 가진 류승룡은 다른 배우들이 갖지 못한 이색적인 '흥행 징크스'도 보유했다. 치킨과의 각별한 인연이다. 이미 '치킨 리암 니슨'이라는 별칭도 가졌다. 할리우드 배우 리암 니슨이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역할을 주로 맡은 활약에 빚대 치킨과 리암 니슨을 접목해 류승룡에 헌사한 별명이다.
실제로 류승룡은 '극한직업'에서 치킨집을 열고 잠복 수사를 하는 형사가 돼 수원 왕갈비 통닭 열풍을 일으켰고, 한국형 히어로 시리즈로 성공한 디즈니+ 오리지널 '무빙'에서도 혼자 딸을 키우는 치킨집 사장이 됐다. 내친김에 치킨의 사촌인 닭강정을 소재로 한 넷플릭스 시리즈 '닭강정'의 주연도 맡았다. 이번 '김 부장 이야기'에서도 지방 공장으로 밀려난 뒤 사무치는 외로움과 소외감에 시달리다가 치킨을 사 놓고 가족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장면으로 짙은 비애를 표현했다.
'김 부장 이야기'는 종영과 동시에 다시 정주행하겠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김낙수 부장의 마지막 모습 뒤로 울려 퍼진 "밥 먹자!"는 외침을 통해 서울 자가, 대기업 부장, 아들의 명문대 진학보다 중요한 가치는 건강하게 일하고 함께 먹는 밥에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면서 'N차 시청'을 부르고 있다.
여운을 느끼는 건 류승룡도 마찬가지다. 종영 뒤 그는 SNS에 장석주 작가의 시 '대추한알'과 박노해의 시 '가면 갈수록'을 쓰고 이 시대의 모든 김낙수들을 응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