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포테이토 지수 83%] ‘여행과 나날’이 담은 회복의 시간, 심은경이 이끄는 고요한 여정
||2025.12.02
||2025.12.02
여행은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을 뜻하고, 나날은 '계속 이어지는 하루하루의 날들'을 의미한다. 얼핏 결이 다른 두 단어지만 미야케 쇼 감독의 영화 '여행과 나날'은 이 상반된 개념을 하나의 제목으로 묶어내며 삶의 본질에 대한 섬세한 질문을 던진다.
영화는 여행과 일상이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 스며들고 겹쳐지며 때론 경계 없이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으로 바라본다. 특별한 목적지로 향하는 여정과 사소해 보이는 일상의 반복이 뒤엉켜 만들어내는 감정을 따라가면서 평범한 여행이 특별한 나날이 되는 순간을 비춘다.
오는 10일 개봉하는 '여행과 나날'은 일본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각본가 이(심은경)가 우연히 찾아든 설국의 여관에서 예상치 못한 시간을 보내며 다시 일상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여정을 그리는 작품이다. 올해 열린 제78회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표범상을 수상하며 일찌감치 화제를 모았다.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새벽의 모든' 등을 통해 젊은 세대의 불안과 유대, 불안정한 현대인들의 연대를 사려 깊게 그려내며 일본 영화계 차세대 감독으로 자리 잡은 미야케 쇼는 이번 작품에서도 소박하지만 따스한 시선으로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꿈결 같은 이야기를 펼쳐낸다.
● 여름과 겨울이 교차하는 이중 구조
'여행과 나날'은 만화가 츠게 요시하루의 '해변의 서경'과 '혼야라동의 벤상', 두 작품을 원작으로 여름과 겨울이 교차하는 이중 구조의 극중극 형태를 취한다. 이가 집필한 각본 속 여름 이야기는 카와이 유미와 타카다 만사쿠가 호흡을 맞추고, 설국에서 펼쳐지는 겨울 이야기는 심은경과 츠츠미 신이치가 이끌어간다. 한 작품에서 여름과 겨울을 동시에 구현하고 이를 통해 마치 두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효과도 낸다.
여름 이야기는 이의 각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로 한 대학의 상영회에서 공개된다. 상영 후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는 "저는 별로 재능이 없는 것 같다"며 회의감을 드러낸다. 이어 그는 "나는 '말'이라는 틀에 갇혀 있다. 여행이란 말에서 도망치려는 행위일지도 모른다"는 고백과 함께 마치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첫 문장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를 떠올리게 하는 눈의 고장으로 떠난다.
겨울 풍경을 즐기던 이는 숙박을 구하려 하지만 호텔은 모두 만실이고, 결국 지도 밖의 깊은 산속 여관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주인 벤조(츠츠미 신이치)와 함께 지낸다. 폭설이 쏟아지는 밤, 우연히 벤조를 나선 이는 마치 꿈같은 시간을 지나며 다시 펜을 들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 '여행과 나날'이 포착한 찰나의 순간
영화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 관계를 둘러싼 시간을 세심하게 들여다보며 아주 작은 계기로 마음이 회복되는 찰나를 길어 올린다.
여름과 겨울을 가로지는 '여행과 나날'은 여름의 푸른 바다와 쏟아지는 폭우, 겨울의 하얀 설산 등 장대한 계절의 풍경 속에서 인물들의 만남을 통해 숨 막히는 일상에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고요하고 잔잔하지만 파동처럼 담아내며 여운을 남긴다. 그 과정에서 파도, 바람, 비, 풀잎 등 자연의 소리에 집중하며 적막하고 분위기 속에서 인물들의 감정이 깊어지는 순간 또한 차분히 포착한다. 두 계절과 함께 이와 이가 창조한 인물들의 여행과 나날은 '말'에서 벗어나 함께한 경험과 시간 속에서 한층 단단해지고 성장한 내면을 느끼게 한다.
미야케 쇼 감독은 '여행과 나날'을 통해 "매일매일을 열심히 진지하게 살아가는 분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음날부터 다시 진지하게 열심히 살아갈 수 있길 바란다"며 "편안한 시간을 누리고 다시 진지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여행과 나날'은 1.37:1, 거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화면 비율을 택해 색다른 인상을 남긴다. 이는 1930~1950년대 초반까지 할리우드 주류 화면비이었으나 와이드 포맷 등장 이후 거의 자취를 감춘 바 있다. 미야케 쇼 감독은 "영화사에서 비율의 기준점이자 내 작품과 가장 잘 어울리는 프레임"이라며 영화 매체의 본질로 돌아가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이러한 선택은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 고전적인 감각을 더하며 관객에게 특별한 영화적 경험을 제공한다.
심은경은 자연스러운 연기로 극을 안정적으로 이끈다. 창작의 벽에 부딪혀 방황하던 한국 출신 시나리오 작가는 설국의 풍경이 펼쳐지는 작은 마을에서도 외지고 오래된 여관에 머물며 잊고 있던 언어와 감정의 조각을 되찾는다. 미야케 쇼 감독은 심은경을 캐스팅하기 위해 원작의 일본인 중년 남성 캐릭터를 국적과 성별을 바꿨다. 많은 대사나 장황한 설명 없이도 이의 내면 변화를 담백하고 정제된 연기로 드러내는 심은경의 연기가 특히 돋보인다.
감독 : 미야케 쇼 / 출연 : 심은경, 카와이 유미, 타카다 만사쿠, 츠츠미 신이치 / 배급 : 엣나인필름 / 장르 : 드라마 / 개봉: 12월10일 / 등급 : 12세이상관람가 / 러닝타임: 89분
[맥스무비 리뷰는 '포테이토 지수'로 이뤄집니다. 나만 보기 아까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반짝반짝 잘 익은 BEST potato(100~80%), 탁월하지 않아도 무난한 작품은 NORMAL potato(79~50%), 아쉬운 작품은 WORST potato(49~1%)로 나눠 공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