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부가 가짜 독립유공자인걸 알자…곧바로 비석을 뽑은 손자
||2025.12.04
||2025.12.04
한동안 잠잠하던 독립유공자 제도에 균열이 생긴 장면이 다시 떠오른다. 조용한 묘역 한가운데에서 한 남성이 비석을 통째로 뽑아 들고 있는 영상이 퍼지며 사람들의 눈을 붙잡았다. 주인공은 김종갑 씨였다.
그는 어느 날 자신이 평생 존경해온 ‘독립유공자 할아버지’의 공적서류를 다시 들여다보다 예상치 못한 진실에 마주한다. 그 문서가 동명인의 공적을 베껴 만든 가짜였고, 그의 집안이 3대가 받는 국가 예우를 사실상 부당하게 누리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의병 활동 기록은 없었고, 독립운동 관련 증거는 단 한 줄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오히려 조사를 거듭할수록 조작의 흔적만 선명하게 드러났다.
김종갑 씨는 흔들렸다. 자신과 가족이 받은 혜택을 떠올리면 침묵하는 쪽이 훨씬 편하고, 아무도 의심조차 하지 않을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국가 예우는 고스란히 포기하고, 가문이 쥐고 있던 훈격까지 스스로 반납하겠다고 결심한다.
‘가짜 독립유공자’라는 단어가 자신의 집안에서 더는 반복되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는 보훈처를 찾아 직접 양심 고백을 했고, 사상 처음으로 유공자 후손이 스스로 조상을 고발하는 사건이 기록된다. 이어 서훈 취소 신청까지 제출하며 단 한 치의 미련도 남기지 않았다.
정부는 사실관계를 다시 조사했고, 2017년 그의 할아버지에게 내려졌던 독립유공자 자격이 공식적으로 취소됐다는 통보가 내려왔다. 그날 김종갑 씨는 묘역으로 향했다. 조용한 산바람 속에서 그는 묵묵히 할아버지 비석을 잡고 뽑아 올렸다.
자신이 태어난 순간부터 ‘독립유공자 손자’라는 호칭을 달고 살아온 사람이 내린 결단치고는 상상 이상의 무거움이 담긴 행동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비석을 들어 올리는 손끝에서 이상하리만큼의 해방감을 느꼈다고 한다.
카메라 앞에서 그는 짧게 말했다. “이 나라에 가짜 독립유공자는 없어져야 합니다.” 그 한 문장은 거창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가족사를 직접 파헤치고, 혜택을 스스로 걷어찬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어떤 이는 왜 조상의 명예를 스스로 무너뜨리냐고, 왜 굳이 조용히 살지 않았냐고 묻는다.
그러나 그는 흔들리지 않는다. 조작된 역사는 더 늦기 전에 바로잡아야 한다는 단순한 신념 때문이다. 이런 선택은 누구에게 강요될 수 없고,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더 강렬하게 남는다.
묘역에서 비석이 빠져나간 자리만 덩그러니 남았지만, 그 빈자리에는 새로운 무게가 쌓였다. 누군가는 쉬쉬하며 넘어갔을 일, 누군가는 오히려 숨기고 싶어 했을 일을 그는 꺼내 공개했다.
그 용기 하나가 독립유공자 제도의 신뢰를 다시 세우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진짜는 남고 가짜는 사라져야 한다는 너무 단순한 원칙이지만, 그 원칙을 행동으로 증명한 사람은 많지 않다. 김종갑 씨가 비석을 들어 올린 그 장면이 지금도 회자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