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심은경 "매 순간 힘을 줄 필요는 없죠"
||2025.12.05
||2025.12.05
"저의 다른 면을 보여주는 영화인 것 같아요. 캐릭터의 성격이나 표현 방식이 기존과 달라 최대한 덜어내려고 했어요. 감독님한테 '이번 영화에서는 아무것도 안 하겠다'라고 농담처럼 말했는데 '아무것도 안 하는 심은경을 찍을 수 있는 행운을 가졌다'고 받아주시더라고요. 하하! 그만큼 여백을 많이 생각하며 연기했고, 저에게도 특별한 경험이었죠."
배우 심은경이 오는 10일 개봉하는 영화 '여행과 나날'에서 힘을 한껏 빼고 섬세한 감정을 보여준다. 슬럼프에 빠진 각본가 '이'가 눈 덮인 작은 마을을 찾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로, 일본에서 차세대 거장으로 주목받는 미야케 쇼 감독의 신작이다. 이 작품은 올해 열린 제78회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은 황금표범상을 수상하며 화제를 모았다.
5일 맥스무비와 만난 심은경은 시나리오에 깊이 공감했다고 밝혔다. "읽자마자 '감독님이 나에 대해서 어떻게 이렇게 잘 알지?'라고 생각했다. 미야케 쇼 감독님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초상이 잘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감독님의 영화는 보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일으켜요. 이번에도 '내 이야기잖아~' 싶더라고요. 확 끌렸던 부분은 이가 본인 각본의 영화 상영 후 GV(관객과의 대화)에서 질문을 받고 '저는 재능이 없는 것 같다'고 말하는 대사였어요. 저는 제 자신을 부족하다고 느끼지만 그걸 말로 내뱉는 건 자신이 없거든요. 그래서 그 대사가 용기 있는 자세처럼 느껴졌어요."
그는 이 캐릭터에 대해 "내 이야기이지만, 나 자신보다 한 발 더 나아간 캐릭터라는 생각에 표현해 보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여행과 나날'은 만화가 츠게 요시하루의 '해변의 서경'과 '혼야라동의 벤상', 두 작품을 원작으로 여름과 겨울이 교차하는 이중 구조의 극중극 형태로 전개된다. 이가 집필한 각본 속 여름 이야기는 카와이 유미와 타카다 만사쿠가 호흡을 맞추고, 설국에서 펼쳐지는 겨울 이야기는 심은경과 츠츠미 신이치가 이끌어간다. 특히 미야케 쇼 감독은 심은경을 캐스팅하기 위해 원작 속 일본인 중년 남성 캐릭터의 국적과 성별을 과감하게 바꾸기도 했다.
심은경은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쓰다가 불현듯 제 생각이 났다고 했다"면서 "3년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감독님과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GV를 진행하며 처음 인사를 나눴다. 그때 제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하더라. 멋을 부리거나 잘 보이려고 하지 않는 모습이 본인이 구상하던 캐릭터와 맞닿아 있었다는 감독님의 인터뷰를 봤다"고 웃었다.
"저는 감독님의 '찐팬'이었고, 언젠가 꼭 하고 싶었던 느낌의 작품이었어요. 그래서 이번 출연은 마치 선물처럼 다가왔죠."
● 심은경이 발견한 '덜어냄'의 미학
심은경은 많은 대사나 장황한 설명 없이도 이의 내면 변화를 담백하게 정제된 연기로 드러낸다.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덜어내는 연기'를 깊이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연기를 하다 보면 '좀 더 해야 되지 않나?' '더 표현하고 감정을 내비쳐야 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이번에 그것이 다가 아니라는 걸 느꼈다"면서 "영화는 프레임의 연결과 편집의 과정을 거쳐 완성되기 때문에 매 순간 힘을 주고 모든 걸 다 표출할 필요는 없다. 상황에 따라 힘을 주고 빼는 게 중요하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고 강조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영화 속에서는 그 캐릭터로 존재해요. '존재한다'는 그 자체에 초첨을 맞췄어요. 실제로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기도 하고 일일이 계산하면서 행동하지도 않잖아요. 거기서 힌트를 얻얻었어요."
대사가 적고 여백이 많은 작품이었지만 오히려 자유로움을 느꼈다고도 했다. 그는 "'말'로 표현되지 않은 것도 분명히 존재하다는 걸 보여주는 영화이기 때문에 연기를 하면서 대사뿐만 아니라 여행을 떠나서 느끼는 심상 등 제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이나 느껴지는 것들을 가감 없이 표현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설국의 외딴 여관을 배경으로 한 촬영 환경도 그의 연기에 자연스러운 결을 더했다. 심은경은 "실제로 그런 설원이나 오래된 여관은 가본 적이 없어서 여행을 떠나는 기분으로 촬영했다"며 "여관이 굉장히 추웠는데, 극 중 이가 추위를 느끼는 장면에는 제 진짜 리액션이 섞여 있을 것"이라고 웃어 보였다.
● "거창한 목표보다 오늘 하루를 소중히!"
심은경은 미야케 쇼 감독에 대한 존경심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그런 어른이 되고자 다짐했다"며 "사려 깊고 배려심이 많은 분이다. 누구보다 영화를 사랑하는 소년이자 모두를 아우르는 큰 어른이었다. 촬영 내내 감독님의 배포와 대담함에 크게 감동했다"고 밝혔다.
"감독님이 촬영 전에 스태프와 배우 전체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영화가 담아내고 싶은 메시지와 '어디 아프면 꼭 얘기해 달라'는 당부가 적혀 있었는데 영화는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 같이 만드는 작업이라는 것이 체감됐어요. 배우와 스태프를 하나로 묶어줬다고 생각해요. 스태프들도 감독님을 따라 훌륭한 현장을 만들어줬죠. 사람과 사람이 함께하는, 인연의 의미가 와닿았던 순간이었어요."
최근 몇 년간 심은경은 일본에서 활동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17년 일본 매니지먼트사 유마니테와 전속계약을 체결한 뒤 2019년 개봉한 일본영화 '신문기자'를 통해 본격적으로 일본 시장에 진출했다. 이후 '블루 아워' '동백정원'과 드라마 '7인의 비서' '군청 영역'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입지를 넓혔다. 오는 13일 첫 방송하는 NHK 100주년 기념 3부작 특집 드라마 '화성의 여왕'에도 참여한다.
일본 활동을 돌아보며 그는 "힘들고 스스로를 의심했던 적은 있지만 후회는 전혀 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일본 시장은 제가 선택했고, 경험해 보고 싶었던 필드였다"며 "돌이켜보면 혼자서는 불가능했을 것 같다. 곁에서 도와주는 분들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고, 그분들의 소중함을 늘 느끼고 있다"고 고백했다.
심은경은 내년 상반기 tvN 새 드라마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으로 오랜만에 한국 드라마로 복귀한다. 그는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때로는 울분을 터뜨리기도 할 것 같다. 블랙코미디 장르인데, 제가 이전에 맡았던 역할과는 상반되는 캐릭터인 만큼 도전이지만 하루하루 즐겁게 촬영하고 있다. 열심히 촬영 중인데 빨리 결과물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기대를 드러냈다.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심은경은 "거창한 목표는 없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어릴 때는 미래를 설계했던 것 같은데 제 뜻대로 되는 건 없더라고요.(웃음) 제일 좋은 건 하루하루 저에게 주어진 것을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는 것 같아요. 미래의 저보다 오늘을 충실히 사는 게 더 중요하더라고요. 오늘은 기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날이니 성심성의껏 하자는 마음으로 왔어요. 그렇게 일상을 소중히 여기다 보면 어느 순간 제가 가고 싶은 길에 조금씩 가까워져 있지 않을까요? 요즘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