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점기 시대 한국의 고아 천명을 돌본 일본인의 놀라운 정체
||2025.12.07
||2025.12.07
최근 역사 커뮤니티에서 뜻밖의 이름이 다시 떠올랐다. 일제강점기의 잿빛 풍경 한가운데서 천 명이 넘는 조선의 고아들을 살려낸 일본인 소다 가이치다. 기록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개심한 한 인간의 선택이 얼마나 강력한 파문을 남겼는지 숨이 멎을 만큼 선명하다.
그는 젊은 시절 막살기 일쑤였고 술에 취해 길바닥을 전전하던 불량배였다. 어느 날 만취해 쓰러졌다가 눈을 뜨니 여관 침상이었고, 여관 주인은 “어떤 조선인이 업고 와 숙박비와 약값까지 대신 냈다”고 전했다. 소다는 은인을 찾으려 수소문했지만 결국 이름도 얼굴도 알지 못한 채 실패했고, 그 사건이 그의 삶을 완전히 뒤집었다.
술을 끊고 행실을 고친 그는 자신을 살린 ‘은인의 나라’에 보답해야 한다는 집념 하나로 1905년 조선으로 건너왔다. 일본어 교사로 일하다 YMCA 종교부 총무였던 이상제를 만나 개신교에 입문했고, 이후 경성감리교회 전도사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경성의 거리엔 먹고살기 막막해 버려진 고아들이 넘쳐났고 그는 교사를 그만두고 아예 보육원을 차려 아이들을 거두기 시작했다.
소다는 매일같이 직접 수레를 끌고 일본군 부대를 돌며 남은 밥을 얻어와 아이들에게 먹이고, 거리에서 헌옷을 주워와 입혔다. 젖먹이 아기가 버려지면 젖동냥을 하다 쫓겨난 적도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 중 상당수는 훗날 독립운동에 투신했고, 투옥될 때마다 소다는 유치장으로 달려가 고개를 깊이 숙이며 아이들을 빼냈다는 증언도 전해진다.
1950년까지 그의 보육원을 거쳐 간 고아는 천 명이 넘는다. 전쟁과 식민의 참혹함 속에서 한 일본인이 남긴 이 기록은 단순한 미담이 아니라, 구조의 사각지대에 내던져진 아이들에게 실제로 ‘살아갈 기회’를 만든 행동의 역사였다. 시간이 흐른 지금, 소다 가이치라는 이름이 다시 들춰지는 이유는 단순한 재조명이 아니다. 그 시절 누구도 손대지 않던 자리에 귀찮게, 처절하게, 오래 버틴 이 한 사람의 선택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