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싸움짱과 싸워 이긴 재벌 2세 소년의 상상 이상의 체격
||2025.12.10
||2025.12.10
(故) 이건희 회장의 청소년기가 재벌가 도련님의 일반적인 화려한 삶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풍족함 뒤편에서 겪은 고독과 결핍의 시간들이, 훗날 ‘신경영’을 선언하며 그룹을 혁신한 그의 독보적인 승부사 기질과 경영 철학의 단단한 주춧돌이 되었다는 분석이다.
1942년 대구에서 태어난 이 회장은 삼성그룹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회장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그의 어린 시절은 부모의 보살핌보다는 외로움이 지배했다. 아버지 이병철 회장이 사업 확장에 매진하고 어머니마저 곁을 비우자, 그는 세 살 무렵부터 경남 의령의 조모 손에 맡겨져 자랐다. 어린 나이에 부모와 떨어진 경험은 그에게 지울 수 없는 정서적 고독감을 남겼으며, 훗날 “태어나면서부터 떨어져 지내는 것이 버릇이 되어 내성적인 성격이 되었다”고 회고했을 정도다.
이후에도 한국전쟁의 발발로 인해 마산, 대구, 부산 등을 전전하며 무려 다섯 차례나 전학을 반복해야 했다. 또래와 꾸준히 어울리기 어려웠던 그는 책이나 사색에 잠기는 시간이 많았다. 특히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의 뜻에 따라 홀로 일본 유학길에 오르면서 외로움은 극에 달했다. 낯선 문화와 타향에서 겪은 한국인으로서의 차별은 어린 소년 이건희를 더욱 내성적으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다스리고 단련하는 강한 자립심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고독했던 학창 시절, 이 회장이 몰두했던 분야는 레슬링이었다. 단순한 취미를 넘어 한국계 프로레슬러 역도산을 존경했던 그는 서울 사대부고 재학 시절 전국 레슬링 대회 웰터급에 출전해 입상할 만큼 열성적인 선수로 활동했다. 그는 훗날 “스포츠가 주는 가장 큰 교훈은 승리에 우연이 없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는데, 이 신념은 레슬링 매트 위에서 체득한 것이었다. 노력과 준비 없이는 절대 성과가 없고 승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철학은 그의 경영 전반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특히 고교 2학년 당시 학교에서 싸움으로 이름났던 학생과 맞붙어 완승을 거둔 일화는 그의 집요함과 승부 근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회자된다. 당시 심판을 맡았던 친구 홍사덕 전 의원의 회고에 따르면 회장은 초반에는 밀렸으나 레슬링 선수답게 상대의 허리를 잡고 들어 올려 제압하는 ‘기술과 힘의 승리’를 이끌어냈다. 이는 그가 어떤 상황에서도 정면 승부를 피하지 않고, 기술적 우위를 바탕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능력을 갖추었음을 입증한다.
이 회장의 강인한 정신력은 훗날 기업가로서 수많은 고독한 결단을 내리는 순간마다 강력한 밑거름이 되었다. 레슬링을 통해 얻은 끈기와 강한 체력은 물론 어린 시절부터 홀로 감내했던 사색의 시간이 그의 깊은 통찰력과 결단력의 바탕이 된 것이다.
실제로 그는 1982년부터 1997년까지 대한레슬링협회 회장을 맡아 한국 레슬링이 올림픽 효자 종목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기여하는 등 평생 레슬링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평범하지 않았던 그의 청소년기는 단순한 ‘재벌 2세’를 넘어, 스스로 몸과 마음을 단련하고 승부를 걸었던 ‘경영 승부사’ 이건희의 뿌리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