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은 어떻게 크리스마스 영화가 되었나
||2025.12.18
||2025.12.18
세계 최대 규모의 영상 아카이브 기관인 영국영화협회(BFI·British Film Institute)가 영화 ‘기생충’을 크리스마스 영화로 꼽아 눈길을 끈다. 성탄 시즌을 배경으로 달콤한 로맨스의 이야기인 ‘러브 액츄얼리’로 대표되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나 ‘나홀로 집에’ 등 코미디 영화처럼 전통적인 크리스마스 영화로 인식돼온 작품들과는 결이 다른 시각이어서 더욱 그렇다.
BFI는 올해 성탄 시즌을 앞두고 대표적인 소파 브랜드인 소파 앤 스터프(Sofas & Stuff)와 함께 연말에 어울리는 영화를 선정, 발표했다. BFI는 영국 국립 영화기관으로, 1933년 설립돼 영화를 비롯한 영상 콘텐츠 전반을 아우른다.
BFI는 “크리스마스에 영화를 보는 것에는 특별한 마법이 있다. 바깥세상의 속도가 느려지고 익숙한 의식들이 돌아오는 이 시기, 영화는 가장 위안이 되는 닻이 된다”면서 “단순히 정형화한 ‘크리스마스 영화’로 정의되지 않는” 영화 대신 “개인의 역사와 의식, 감정을 울리는 영화들, 다시 말해 매년 반복해서 찾게 되는 ‘비정형적’ 선택들”을 소개했다.
이에 소파 앤 스터프 측을 인용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비롯해 줄리엣 비노시가 주연하고 레오스 카락스 감독이 연출한 ‘퐁네프의 연인’ 등 10여편을 관람 목록에 포함했다.
BFI는 소파 앤 스터프 측을 인용해 ‘기생충’이 “아름다운 영상과 예측 불가능한 전개로 가득한 영화”라고 설명했다. ‘기생충’은 부잣집에 스며든 가난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계급의 문제를 그려내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 등을 거머쥔 작품이다.
BFI는 ‘기생충’에 대해 “하루의 혼란이 지나간 뒤 조용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남은 음식을 담은 접시를 들고 소파에 웅크린 채, 처음부터 끝까지 몰입하게 만드는 영화에 빠져드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고 부연했다.
‘퐁네프의 연인들’은 “연례 의식”처럼 “아이들을 재워두고 와인 한 잔 손에 든 채” 감상하는 영화라면서 “평범한 사랑이 얼마나 특별해질 수 있는지를 일깨워준다”고 썼다. ‘퐁네프의 연인들’은 프랑스 파리의 센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퐁네프 위에서 처음 만난 남녀의 열정적인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빔 벤더스 감독의 1987년작 ‘파리, 텍사스’도 꼽혔다. 영화는 기억을 잃은 주인공이 정체성과 함께 단절된 가족의 복원을 향해 길에 나서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로드무비이다. “긴 여백과 아픈 침묵으로 가득한” 영화가 “계절의 잔잔한 틈에 꼭 맞는 작품”이라면서 “집이 고요하고, 조명이 낮아지며, 소파가 ‘보는 곳’이자 ‘생각하는 곳’이 되는 순간 어울리는 영화”라고 가리켰다.
현실에 대해 담담하면서도 강렬한 메시지를 통해 발언해온 켄 로치 감독의 2006년작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도 전통적으로 느껴져온 성탄 시즌의 감성에서 멀어져 보인다. 영화는 1920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꿈꾸는 아일랜드인들의 처절한 투쟁을 그렸다.
BFI는 “이 계절의 감정적 개방성 속에서 특별한 힘을 얻는다. 정직하고 감정적이며, 실제 인간의 경험에 깊이 뿌리내린 작품”이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파에 몸을 맡기고 가족의 소중함을 진정으로 느끼기에 완벽한 영화”라고 권했다.
켄 로치 감독의 또 다른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도 “친절, 존엄, 서로를 돌보는 마음이라는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상기시켜준다”는 점에서 연말이라는 계절에 어울리는 작품으로 꼽혔다. 영화는 한 평범한 목수가 겪는 사회복지의 냉혹한 이면과 관료주의의 비효율성을 꼬집은 이야기이다.
BFI는 이 밖에도 ‘렛 미 인’과 ‘아이스 스톰’ 등 차가운 감성을 안게 하는 작품들도 “분위기 하나, 기억 하나, 혹은 그 순간에 딱 맞는 영화면 충분하다”며 관람을 권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