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세계 최고의 성(性)진국이 된 진짜 이유
||2025.12.22
||2025.12.22
19금이라는 단어가 여전히 금기처럼 쓰이는 사회와 달리 일본은 성인 영상 제작이 합법이고, 편의점 진열대에 성인 잡지가 놓이는 나라다. 세계 최대 성인용품 기업을 보유했고 성인 콘텐츠 산업은 일본 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이 현상은 단순한 퇴폐나 개방성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일본의 성산업 규모는 연간 수십조 원대로 비공식 추정되며 GDP의 1~3%를 차지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방비와 맞먹는 수준이지만 이 산업은 최근에 갑자기 커진 것이 아니다. 일본 사회가 성을 어떻게 인식해 왔는지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뿌리가 드러난다.
그 출발점으로 자주 언급되는 풍습이 요바이다. 밤에 남성이 마을 여성의 집을 찾아가 관계를 맺는 이 관습은 19세기 말까지 일본 농촌에서 존재했다.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인구 유지와 공동체 안정을 위한 사회적 장치였다.
여성에게는 거부권이 있었지만, 요바이를 오는 남성이 없다는 사실은 오히려 결격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부모가 대신 남성을 불러오는 사례도 기록돼 있다. 성적 행위는 은밀한 비밀이 아니라 공동체가 관리하는 공식적 행위였다.
이런 인식의 바탕에는 일본 고유 종교인 신도가 있다. 일본 창세 신화에서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는 성적 결합을 통해 일본 열도와 신들을 창조한다. 성은 죄나 금기가 아니라 세계를 만드는 신성한 행위로 설정돼 있다.
이 세계관은 실제 사회 관습으로 이어졌다. 풍요를 기원하는 축제에서 남녀가 공식적으로 관계를 맺는 풍습이 존재했고, 성은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생산의 수단으로 받아들여졌다. 감춰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불교가 전래되며 금욕 사상이 들어왔지만 일본은 이를 독특하게 수용했다. 사찰에는 여성 출입 금지 규칙이 생겼고, 대신 승려와 소년 사이의 동성 관계가 관습처럼 자리 잡았다. 와카슈도는 조선 통신사 기록에도 등장할 만큼 널리 알려진 문화였다.
문학 역시 성을 숨기지 않았다. 헤이안 시대에 쓰인 겐지 모노가타리는 왕족의 연애와 성관계를 노골적으로 묘사하며 천 년 넘게 읽혔다. 성에 대한 개방적 인식이 상층에서 대중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에도 시대에는 상인 계층이 성문화를 소비하며 폭발적으로 확산시켰다. 풍속 소설과 춘화는 서민 오락이 됐고, 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전통을 만들었다. 이 흐름은 현대 일본의 성인 만화와 애니메이션 문화로 이어졌다.
결정적인 계기는 전후였다. 일본 정부는 패전 직후 점령군 범죄를 통제하고 사회 혼란을 막기 위해 성산업을 국가 관리 체계 안에 편입했다. 성은 억눌러야 할 혼란이 아니라 질서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기능했다.
요바이와 축제, 신화와 문학, 전후 국가 관리까지 이어진 흐름은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된다. 일본에서 성은 금기가 아니었다. 삶의 일부이자 사회를 유지하는 장치였다. 그래서 일본의 성문화는 천 년에 걸쳐 축적된 역사적 선택의 결과라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