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 대통령의 첫번째 부인의 정체와 이혼후 그녀의 인생은…
||2025.12.22
||2025.12.22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영부인’ 하면 대중은 흔히 육영수 여사를 떠올린다. 하지만 화려한 청와대의 기록 뒤편에는 역사의 물줄기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지워져야만 했던 또 한 명의 여인이 있다.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첫 번째 부인, 김호남(1919~1990) 여사다.
1936년, 대구사범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던 19세의 박정희는 아버지의 강권에 못 이겨 16세의 김호남과 혼례를 올렸다. 신식 교육을 받은 박정희에게 전통적인 시골 여성이었던 김호남은 자신이 꿈꾸던 ‘신여성’의 모습이 아니었다. 박정희는 결혼식 직후 신혼방도 거치지 않고 학교로 돌아갔으며, 이후 문경에서 교사 생활을 하면서도 아내의 존재를 철저히 숨겼다.
1937년, 장녀 박재옥이 태어났음에도 박정희의 냉대는 계속되었다. 생활비조차 보내지 않았던 그는 방학 때 고향에 내려와서도 아내와 한방에 드는 것을 거부할 정도로 철저히 외면했다. 가문의 결정에 의한 강제된 결합은 결국 한 여성의 삶을 평생 그림자로 남게 했다.
해방 후 박정희가 이현란과의 동거를 거쳐 육영수 여사와 재혼을 결심하면서, 김호남 여사와의 인연은 법적으로도 종지부를 찍게 된다. 1950년 11월, 김 여사의 이름은 박정희의 호적에서 공식적으로 삭제되었고, 한 달 뒤 박정희는 육영수 여사와 식을 올렸다. 이때부터 김호남은 ‘대통령의 전처’라는 꼬리표조차 허락되지 않은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혼 후 김 여사의 삶은 더욱 고요한 곳으로 흘러갔다. 그녀는 세속의 인연을 끊고 불교에 귀의하여 경상남도 합천의 연호사, 광주 상무대 인근의 무각사 등 여러 사찰을 전전하며 공양주로 봉사했다. 그녀는 스스로의 불명을 ‘달의 형상을 지닌 이’라는 뜻의 ‘월상(月象)’이라 지었다.
그녀는 사찰 안에서도 자신이 누구인지 결코 드러내지 않았으며, 한 시대의 권력자였던 전남편에 대해서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함께 절을 오가던 사람들조차 그녀가 누구인지 몰랐을 정도로 그녀의 선택은 철저한 체념이자 자기 수양이었다.
김 여사가 남긴 유일한 혈육인 장녀 박재옥 여사 또한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야 했다. 부모의 보살핌 대신 친척 집을 전전하며 성장한 그녀는 훗날 청와대에서 생활하기도 했으나, 대중에게는 육영수 여사의 친척으로 오해받을 만큼 존재가 드러나지 않았다. 박재옥 여사는 2020년 82세의 나이로 별세할 때까지 ‘대통령의 숨겨진 장녀’로서 조용한 삶을 유지했다.
김호남이라는 이름은 우리 현대사가 권력의 정당성과 체면을 위해 무엇을 희생시키고 지워왔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화려한 영부인의 연대기 너머, 사찰의 어두운 뒷방에서 침묵으로 생을 마감한 한 여인의 서사는 20세기 한국 현대사의 또 다른 아픈 이면으로 남아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