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육군 일병 1명이 北 공작원 3명을 제압한 전설적인 사건
||2025.12.23
||2025.12.23
1980년 3월 23일 새벽, 육군 9사단 백마부대 소속 황중해 일병이 한강 하구로 침투한 무장공비 3명을 전원 제압한 ‘3·23 완전 작전’이 창군 이래 아군 피해 없이 적을 일망타진한 육군의 전설적인 대침투 작전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사건은 일요일이었던 1980년 3월 23일 새벽 2시 50분경 발생했다. 거센 비바람과 진눈깨비가 몰아치던 한강 하구 경계 근무 중, 황 일병은 전방 80m 지점에서 무장한 공비 3명을 포착했다. 그는 즉시 김범규 이병을 소초로 보내 지원을 요청하고 홀로 초소를 지키는 대담성을 보였다.
공비들이 50m 앞까지 접근하는 순간, 대대 이등병 표적 사격 대회 1등을 차지할 정도로 사격에 일가견이 있었던 황 일병은 소총 장전 과정에서 탄이 걸리는 기능 고장을 겪는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침착하게 고장을 해결한 그는 조정간을 자동으로 놓고 기습 사격, 선두 공비의 흉곽을 정확히 관통시켰다. 당시 거센 비바람 소리가 총성을 덮어 나머지 공비들은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곧이어 현장에 도착한 김 이병과 소대 지원 병력과 함께 황 일병은 대은 사격을 준비하던 두 번째 공비의 목을 관통시켜 제압했다. 조명탄이 터지자 눈 밑에 웅크리고 있던 마지막 공비마저 도주 중 사살되면서, 새벽 3시 35분, 45분 만에 작전은 완벽하게 종료됐다.
이들이 소지했던 잠수복, 체코제 기관총 등으로 미루어 서울 진입 후 사회 혼란을 유발하려 했던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조금이라도 판단이 잘못되었다면 서울 인근 철책이 뚫렸을 아찔한 순간이었다.
황 일병은 이 작전의 공로로 2계급 특진과 함께 1년 휴가, 헬기 고향 방문, 당시 아파트 한 채 값에 가까운 1,700만 원의 포상금을 받는 등 획기적인 특전을 받았다.
군 당국은 그의 헌신을 기려 2002년 5월 해당 구산리 소초를 육군 역사상 최초로 현역 부사관의 이름을 딴 ‘황중해 소초’로 명명하고 현재까지 보존하고 있다. 황 일병은 이후 부사관에 지원해 상사로 전역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