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한 북한 여군의 세뇌를 한순간 풀어버린 국정원이 준 이 음식
||2025.12.24
||2025.12.24
1990년대 북한에서 태어나 고난의 행군 시기를 겪고 6년간 인민군 간호사로 복무했던 채수향 씨가 한국에 정착하기까지의 여정을 밝혔다. 이 내용은 채 씨가 유튜브 채널 ‘사이다 : 사실은 이렇습니다’에 직접 출연해 인터뷰를 통해 밝힌 내용이다. 채 씨의 탈북 결심은 북한의 불합리한 사회 구조와 한국의 실상에 대한 깨달음에서 비롯되었다.
군 전역 후 생계형 중국 무역에 나섰던 채 씨는 자유로운 국경 통행과 장사를 위해 보안서, 국경 경비대 등 수많은 기관에 뇌물을 바쳐야 했다. 반면, 중국을 오가며 접한 한국 물품과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정보는 그녀에게 충격을 안겼다.
채 씨는 “세금을 내고 자유롭게 하는 자본주의와 달리, 북한에서는 불법 밀수로 주눅 들어 더 많은 돈을 갖다 바쳐야 했다”며, 끝이 없는 뇌물의 고리를 벗어나고자 탈북을 결심한 결정적 계기를 설명했다.
2개월 반의 험난한 탈북 과정을 거쳐 2015년 한국에 도착한 채 씨는 국정원 보호센터에서 받은 첫 식사에서 벅찬 감동과 충격을 동시에 경험했다. 배식판 위에는 김치와 함께 소고기 장조림이 올라와 있었다. 북한에서는 소를 함부로 잡아먹는 것이 엄격한 범죄였기에, 채 씨는 그것이 소고기라는 것을 처음에는 믿지 못했다고 한다.
그녀는 “소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이게 한국이 맞구나, 우리 같은 민족이 맞구나라는 게 체감됐다”고 밝히며, 이 식사 한 끼가 오랫동안 북한 체제가 심어 놓았던 사상적 세뇌를 한순간에 풀어버리는 놀라운 경험이었다고 강조했다.
이후 하나원 교육을 마치고 사회에 진출한 채 씨는 단돈 10만 원을 들고 상경, 회계 공부와 강연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는 통일 관련 연구원 근무와 대학 공부를 병행하며 새로운 삶을 개척 중이다.
그는 한국에서 ‘가르친다’는 표현을 북한에서는 ‘배워준다’고 쓰는 등 언어적 차이를 겪었으며, ‘동작’과 ‘작동’의 차이에도 당황했던 경험을 전했다. 채 씨는 앞으로 가족들과 함께 큰 사건 없이 건강하고 무난하게 살며, 받은 도움을 사회에 환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소박하면서도 단단한 포부를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