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시절 연예인이었던 조선 최고의 미녀 기생들
||2025.12.24
||2025.12.24
삭막했던 일제강점기, 암울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도 예술적 재능과 빼어난 미모로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이들이 있다. 최근 재조명된 당시 최고의 여성 예술인 6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평양에서 장연홍을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평양 최고의 기생이었다. 그녀를 보기 위해 문전성시를 이루었으며, 수많은 남성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고 전해진다. 미모뿐 아니라 예능 실력도 출중하여 평양 기성권번의 자존심으로 불렸다.
박온실은 당시 조선과 일본이 공동 주관한 미인 대회인 ‘미스 조선’에서 1위(진)로 당선되며 공식적으로 그 미모를 입증받은 인물이다. 서구적인 이목구비와 세련된 분위기로 당대 남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최고의 스타였다.
조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미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이난향은 가곡의 거장 하규일로부터 그 실력을 인정받은 정통파 예술가였다. 미모가 워낙 출중해 왕 앞에서도 공연을 펼칠 정도였으며, 근대 가요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평양 기성권번 출신으로 상경 후 한성권번에서 활동한 현매홍은 당대 최고의 ‘엔터테이너’였다. 가곡, 가사, 시조 등 전통 예술에 능통했을 뿐만 아니라, 기생 조합 최초의 잡지인 ‘장안’의 편집인으로 활동하며 지성미까지 뽐냈다. 일동 추금기 음반 등을 통해 그녀의 목소리가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평양 기성권번 출신인 김옥엽은 공중 무용과 서도잡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30대에 접어들며 가곡과 가사 분야에서 독보적인 인기를 구가했으며, 특히 문학가 김동환과의 뜨거운 로맨스로 세간의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수십 장의 음반을 남길 만큼 당대 최고의 실력파로 인정받았다.
정확한 활동 분야에 대한 기록은 드물지만, 1920~30년대 발행된 기생 화보와 잡지에 가장 많이 등장할 정도로 압도적인 미모를 자랑했다. 당대 최고의 ‘비주얼 스타’로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인물이다.
장학선 등과 함께 평양의 대표 기생으로 꼽혔던 김영월은 소리 실력은 물론 연기력까지 갖춘 인재였다. 특히 1927년 개봉한 영화 ‘낙양의 길’에서 여주인공을 맡으며 스크린을 누볐던 1세대 영화배우이기도 했다.
대전권번 출신인 윤채선은 무엇보다 춤 솜씨가 일품이었다. 특히 조선 무용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아름다운 선을 보여주었으며, 뛰어난 외모 덕분에 수많은 남성으로부터 구애를 받았던 일화로도 유명하다.
한성권번에 몸담았던 이옥란은 전통 국악뿐만 아니라 근대 양악까지 섭렵한 진취적인 예술가였다. 동서양의 음악을 오가는 폭넓은 예술적 스펙트럼으로 대중에게 큰 인기를 누리며 근대 음악사에 이름을 남겼다.
이들은 단순한 예능인을 넘어 잡지 편집, 영화 주연, 음반 발매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며 한국 근대 대중문화의 기틀을 마련한 선구자들이었다. 100년 전 그녀들이 남긴 예술적 향취는 오늘날의 시각으로 봐도 여전히 빛나고 있다.
